■기관탐방-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 2022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수단 중 농약중독은 세 번째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2022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는 3392명으로 전년대비 5.8% 감소했고, 10만 명당 자살률은 41.7명으로 10.6% 감소했다. 노인자살률은 전반적인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평균이 17.2명인 것과 비교하면 2.7배나 높은 수준으로 자살고위험국의 경고등은 여전히 꺼지질 않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수단은 목맴, 추락, 농약중독의 순이었는데, 그중 농약중독은 전체연령 5.2%, 청소년 0.1%인 것에 비해 9.2%p 나 높은 14.5%에 이르고 있다.

농촌에서 손쉬운 자살수단으로 악용되던 농약으로 인한 음독자살을 막기 위해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하 생보재단)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4만7964가구에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하고, 6260명의 생명사랑지킴이를 양성했으며, 우울 및 자살 고위험군 어르신 1010명에게 정신건강 의료비를 지원했다.

농촌 자살예방 성공모델 ‘농약안전보관함’ 보급
자살예방 외면하던 지자체의 동참 이끌어

보관함으로 경각심 생겨
19개 생명보험회사의 공동협약에 의해 2007년 설립된 공익법인인 생보재단은 자살예방, 생명존중, 고령화극복 지원사업 등을 지원해 왔다. 특히 농촌에 만연화된 농약음독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2011년 농약안전보관함 사업을 시작했다. 맹독성의 그라목손 생산과 판매 중단과 함께 농약안전보관함 보급은 음독자살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이지영 사업추진본부장

생보재단 이지영 사업추진본부장은 “보급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만족한다’는 응답이 94.6%, ‘자살예방이 도움이 된다’ 89.4%였다. 예전엔 위험하기 그지없는 농약을 마당에 두거나 심지어 주방에 보관하면서 식용유로 헷갈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심각했는데 보관함을 두면서 위험성을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고 사업의 성과를 설명했다.

현재는 신청하는 지자체 경쟁률이 3:1을 넘을 정도로 자살예방 안정망으로 평가받는 이 사업은 12년 동안 지속되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농약병 크기와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단 높이를 쉽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색상도 노란색으로 쉽게 눈에 띨 수 있도록 했다.

이 본부장은 “욱하는 마음에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없게 거울이나 가족사진을 붙이도록 했고, 노인들이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철판두께와 바퀴높이, 외부에 열처리를 해 강도를 높여 녹스는 걸 방지하는 등 생산업체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2011년 농약안전보관함 보급을 필두로 농촌사회에 다양한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펼쳐오고 있다.

후순위던 자살예방에 긍정적 변화
올해 생보재단은 전북 정읍을 시작으로 경기(동두천), 강원(삼척), 충북(단양), 충남(예산), 전남(해남·진도), 경남(함안·거제), 제주(제주·서귀포) 등 11개 시군구 2000가구에 보관함을 보급한다. 자살률 현황과 최근 자살 변동 추이, 농약안전보관함 보급률 등을 고려해 선발하는데 특히 액수를 떠나 관련예산을 얼마나 세웠는가를 중요하게 살핀다.

많이 보급할 땐 1만 개까지 지원한 적도 있었지만 많은 지자체가 이 사업을 농촌지역 자살예방 성공모델로 벤치마킹하면서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늘면서 보급규모는 자연스레 줄어들게 됐다.

이지영 본부장은 “자살예방은 개인이나 한 기관에서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보관함 보급 이외에도 설치되는 마을에 지자체가 이장 등을 생명사랑지킴이로 임명하도록 하고, 보건소와 정신보건센터가 함께 주민의 우울함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사업에 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도의 수당은 없지만 지자체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생명사랑지킴이는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자신이 사는 마을의 삶의 질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갖게 된다. 정신건강의 전문가인 정신보건센터 직원과 생명사랑지킴이가 동행해 각 가정을 방문해 직접 안부를 챙기며 인간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우면서 농촌사회에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마을회관에서 모이는 횟수가 줄며 농촌노인의 고립감은 심화되며 자살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활약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게 이 본부장의 평가다. 지난해까지 생보재단은 정신건강의료비를 지원했지만 지자체에서 자살예방 관련예산을 편성하면서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지영 본부장은 “과거엔 자살문제를 쉬쉬하거나 외면하는 지자체가 대다수라 예산반영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농약안전보관함 보급도 초창기엔 각 지자체를 찾아다니며 신청을 독려했지만 지금은 자살예방 프로그램으로 효과를 인정받으며 담당공무원을 배치하고 자문을 구하는 건 물론이고 자발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지자체가 늘어나는 등 긍정적 변화가 생긴 건 생보재단이 생명사랑의 씨앗을 뿌린 결과물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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