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73)

본능적으로 새끼 보호하려
모성애가 이글거렸다...
아이는 극성스런 엄마를 
경이로운 눈으로 봤다. 

48시간이 480시간 같은 이틀을 보냈다. 바람 없는 잔잔한 일상에 돌풍 회오리가 불어온 듯, 일상의 지축이 흔들렸다. 어제, 그제, 혼비백산해서 이틀을 보냈다.
6월6일 생일을 맞은 둘째가 집에서 독립해 근거리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휴일에도 근무를 하고 있는데, 가슴에 종기가 나서 너무 아파 병원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카톡이 왔다. 정확히는 가족 카톡방에 생일 축하한다고 모두가 안부 인사를 올리니, 둘째가 자신의 근황을 알린 것이다.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끓여 간다고 해도 굳이 오지 말라고 해서 의견을 존중한다고 축하금만 쐈는데, 둘째가 병원을 간다는 말에 나는 하던 일을 바로 접고 총알택시처럼 날아갔다. 
둘째는 가슴에 종기가 났는데, 가라앉겠지 하고 참고 있다가 병원이 쉬는 주말에 점점 더 커져서 월요일 생일날에 출근을 했지만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가 없어 병원을 가기로 했단다.

그 소식을 접한 나는 바로 달려가서 아이의 상처부위를 살폈다. 염증이 탱탱하게 부어올라 손끝만 스쳐도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어쩌자고 이렇게 참고 있었냐~”고 혀를 찼다. 아이는 정작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일에는 무심했다가 엉뚱한 인내심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상처부위를 살피는 도중 염증화농이 터져서 피고름이 줄줄 흘렀다. 살아온 연륜으로 돌팔이 의사쯤 되는 나는 오히려 터진 게 잘 됐다며 피고름을 어느 정도 닦아내고 서귀포의료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휴일이라서 간단한 치료만 하고 큰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큰 병원은 제주시에 있는 제주대학병원이나 한라병원 정도이고, 더 큰 수술이나 정밀검사는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는 일이 많다. 우선 한라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요 근래에는 병원을 찾을 일이 없어서 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큰길에서 차가 줄을 서서 대기하는 장면이 낯설었고, 주차타워 6층까지도 자리가 없는 것도 생소했다.

어리바리하며 간신히 주차하고, 일단 가장 잘 한다는 의사선생님 부서에 접수를 해 보니 6월20일에나 진료가 가능했다. 긴급환자가 보름 후에나 진료를 받는다면 그사이 병이 진행돼서 큰 병이 될 게 아닌가? 
오래전에 시누이 딸이 가슴에 화농염증이 생긴 것을 응급치료만 하며 진료대기하고 기다리다가 크게 번져서, 결국 가슴 한 쪽을 제거하게 된 기억이 상기됐다. 모르거나, 뒷배가 없거나 해서 곧이곧대로 하다가 겪게 되는 불편부당한 일이 이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가... 

나는 본능적으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모성애가 이글거리며, 어떤 떼를 써서라도 아이가 치료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의료원에서 겨우겨우 받아온 소견서를 내밀며 응급실로 달려가서 사정을 했다. 제발 전문가에게 치료받게 해 달라고...

사정이 통했는지 뵙기 어려운 전문가 선생님께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일단 응급처치를 하고, 부기가 가라앉아야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당분간 통원하며 치료하기로 했다. 
아이는 극성스런 엄마를 경이로운 눈으로 봤다. 
“60년을 살아낸 내공이 헛것이 아니여~” 하며 위기대응능력이 매순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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