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쉬는 무형유산 이야기⑴ – 전남 담양 서신정 채상장

농촌은 우리 먹거리 생산과 함께 옛 선조들이 지켜온 전통유산이 발견되고 보존·전승돼온 터전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한복, 김치 등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선조의 지혜가 담긴 무형유산을 다른 나라가 우기는 만행을 겪어야 했다. 이에 우리나라 무형유산 주권의식을 높이고 이를 지키고 전승해온 보유자를 만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통유산의 가치를 조명해본다.

장인 손에서 짜임의 미학 깃든 ‘채상’
IMF 위기, 현대화된 채상으로 정면돌파

▲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생활에서 쓰임 있는 채상 현대화에 앞장선 서신정 채상장

“설렘을 안고 제작 주문한 채상을 받으러 왔어요. 서신정 선생님 작품을 몇 개월 동안 손꼽아 기다리며 차례가 올 때까지 줄섰죠. 친구들에게 선물한 채상까지 하면 70개는 족히 구매했을 거예요.”

전남 담양 죽녹원에 위치한 채상장전시관을 둘러보는데 채상 열혈 팬임을 자처한 50대 여성고객이 호탕하게 말했다. 이번에 손에 넣은 채상제품이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 듯 했다.

오로지 채상은 수작업
채상은 물건을 담는 상자다. 조선 중기 궁궐에서만 쓰던 귀족 공예품이었다. 조선 후기 신흥세력이 등장하고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임금이 양반도 채상을 사용해도 된다고 명했다고 한다. 양반가 신랑이 신부 집으로 함보내기 할 때 채상을 쓰면서 전통혼례문화에 자주 등장했다. 채상은 대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튼튼한데 실용적이기까지 해 인기가 많았다.

대나무가 많아 대바구니 최대 산지인 담양에서 대바구니 전문가들도 채상을 고가의 죽세공예품으로 인정한다. 채상은 다른 공예품과 달리 재료부터 만들어야 한다. 손으로 시작해 손으로 마무리돼 품이 많이 든다. 왕대나무를 종이처럼 얇고 실처럼 길게 쪼개 색을 입힌다. 

“1979년 아버지이자 2대 채상장 서한규옹의 뜻을 이어 기능을 전수 받았고, 2012년 문화재청 채상장 보유자로 국가무형문화재 인정을 받았어요. 채상의 전승체계는 ‘전수생-이수자-전승교육사-보유자’로 오랜 기간이 걸려요. 채상 외길을 걸은 지 올해로 43년 됐습니다.”

서신정 장인은 대나무를 균등하게 떠내는 것부터 채상 작업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매번 담양대나무시장에서 3~4년 자란 왕대나무를 손수 구입한다.
“대칼을 손에 쥐고 대나무를 쪼개고, 입으로 물어 얇게 떠낸 후 완성된 대살을 다양한 색으로 염색해 문양을 짜며 상자 형태로 모양을 잡아 나갑니다.”

아버지가 대살을 만들면, 서신정 장인이 염색하고 문양을 짜고 바느질 하는 섬세한 작업을 했다. 35년 동안 아버지와 손발을 맞추면서 체계화된 분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편 김영관씨가 대살 기능을 전수 받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죽녹원 내 위치한 채상장전시관에서는 장인의 채상 시연과 판매가 이뤄진다.

생활밀착형 채상에 앞장
부녀가 호흡하며 채상 기능을 체득한 지 20여 년이 지났을 무렵 IMF 경제 위기가 발발하면서 전통혼례문화도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까지 서신정 장인은 아버지와 일주일 동안 삼합채상을 만들었는데, 주문이 끊겨 당장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 한다.
“채상을 사용할 일이 없어지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니까 고민이 많았어요. 아름다운 채상을 전승해야 되는데 큰일이었죠. 채상을 한 개라도 생활 속에서 쓸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채상을 짜는 전통기법을 토대로 현대화된 채상 만들기에 돌입하면서 서신정 장인은 20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갖은 고생을 다해야 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면서 통장 잔고는 늘 마이너스였어요. 한지와 채상이 어우러진 부채를 시작으로 가죽가방에 채상을 짜고 금속과 칠보에도 채상을 접목해봤죠.”

서 장인이 작업한 쓰임새 있는 생활 작품은 50여 종이 넘어 채상장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채상이 생활밀접형으로 발전하면서 채상을 찾는 소비층도 넓어졌다. 서 장인이 아버지와 일할 때는 60대 고객이 주였다면 최근에는 40~50대 고객이 많아졌다고 한다.
“30대까지 채상 소비층을 내리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채상이 알려지고, 젊은 세대에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 최근 구매율이 높은 신상품 ‘채상소반’

실용적인 채상제품 인기 
다양한 채상을 만들어내는 모험에는 창의력이 필요하고, 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면서 지속 발전해나간다는 서신정 장인이다.
“새로운 생각을 구현해내는 작업이 저를 늘 설레게 만들어요.”
요즘 가장 핫한 신상 채상은 ‘채상소반’이라고 서 장인은 소개했다. 채상소반은 손잡이가 있어 소풍갈 때 음식이나 물건을 담아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옻칠을 해서 설거지가 가능해 깨끗하게 오래 쓸 수 있다. 함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뚜껑이 있어 찻상으로 활용해도 좋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면서 채상을 전승하고 발전시키고 싶다는 서 장인은 외아들 김승우씨를 채상장 이수자로 성장시켰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갖고, 아들이 채상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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