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64)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아름다운 꽃멀미에 취해
인생은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잔잔히 말한다..."

벚꽃이 만개해 세상이 환하다. 수 많은 봄꽃들이 다들 화사하고 빛나지만 가로수에 핀 벚꽃들은 하늘을 뒤덮고 꽃구름을 만들어서, 그 화사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 국화(國花)라며 꽃마저 배척할 일인가 싶지만, 방방곡곡에 벚꽃놀이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꽃 무궁화는 보기 드문 게 아쉽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하나, 벚꽃은 피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주일 안에 지기 시작하니, 그 화사함의 짧음이 속절없기도 하다. 곳곳에 벚꽃길이 조성돼 멀리 가지 않아도 벚꽃의 화사함을 만끽할 수 있어서 출퇴근길이나 용무 시 일부러 벚꽃길로 가면서 꽃 호사를 누리고 있다. 전에는 꽃의 생명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했으나 이제는 일 년 중 일주일만 화사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짧지만 강렬하게...도 좋다.

이 화사한 꽃이 한때 한없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청춘의 한가운데, 내 나이 27살, 1987년도, 뒤늦게 간 대학생 시절. 동양 최대라던 교정의 연분홍 벚꽃이 온 교정을 뒤덮어서, 사람의 세계인가, 신선의 세계인가 싶게 꽃구름 속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캠퍼스는 온통 꽃동산이었지만 시절은 어수선해서, 대학가에서는 1980년도에 일어난 광주사태의 실상이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로 붙어 벚꽃나무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벚꽃은 속절없이 꽃비가 돼 쏟아졌고, 벚꽃 잎처럼 꽃비가 된 영혼들이 공중에 흩날리며 우는 듯했다. 사람 세상은 그때도 아우성이었고, 지금도 아우성이다.

가난한 고학생이던 나는 ‘내 코가 석자’라 시국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두 건의 과외를 하고, 저녁마다 카페에서 캐셔(casher)를 보며 생계를 해결해야 했는데, 덜컥 폐결핵까지 걸린 것이었다. 영양실조와 과로로 인한 병, 폐결핵은 강적이었다. 

12알의 약을 아침 식전에 매일 9개월을 먹어야 했고, 매일 엉덩이에 주사를 6개월간 맞아야 했던 병이었다.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하는 가난한 고학생에게 찾아온 병이라 암담했으나, ‘삶과 죽음은 하늘 뜻에 있는 것’이라고 대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아무도 기댈 것이 없을 때, 삶과 담판을 지을 수밖에 없을 때, 안에서 힘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을 때, 삶의 의지가 생긴다. 

나는 과외도 그대로 하고, 알바도 하고, 학교도 그대로 다녔다. 약기운에 취해서 길이 춤을 췄고, 내 엉덩이에 내가 주사를 매일 놓으니 엉덩이가 딱딱해서 주사바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아득하고, 몽롱했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저...시간에 몸을 맡기고 천상 위의 구름에 실려가 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벚꽃나무 아래서 꿈꾸듯이 세상을 바라봤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바람처럼 떠돌았지만 돌아보니 내가 마음이 제일 가벼웠을 때였다. 가난하고 아픈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지금 가난한 청춘인 젊은이들에게 ‘희망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20대의 꽃멀미와 60대의 꽃멀미가 결이 다르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아름다운 꽃멀미에 취해서 인생은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잔잔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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