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62)

무기력해지거나 타성에 젖을 때 
날 곧추세우게 해줄 이정표가 된
마중물 언니에게 기립박수를...

지난해 11월, 동해안 해파랑길에 <80세, 꿈꾸다>라며 도전장을 냈던 마중물 언니는 올 봄에 또 나를 놀라게 했다. 대학의 환경원예학과에 편입해 81세 대학생이 됐다고 부끄럽다며 알려줬다. <겸손은 힘들어 팀>의 왕언니답게 부끄럽다고 반어법을 쓰지만, 우리는 자랑스럽다고 알아듣고서 환호를 했다.
학력이 부족해 채우려는 것도 아니다. 1960년대 그 시절에 최고학부를 나온 재원이시고, 결혼해 대학원까지 나왔으니 부족한 학벌을 채우려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가 쉼 없이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 10년 동안 가꾼 뜰을 보다 전문성을 갖고 가꾸고 싶어서 다시 전공을 했다 한다.

아무튼 놀랄 노자를 연발하게 하시는데, 지난해 12월에는 창업을 했다고 한다. 80세에 무슨 창업?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프립이라는 여행사이트에 등록해 집에서 하는 할머니찻집을 개업하셨다. 뜰에서 나오는 꽃들로 꽃차를 만들어서 이야기가 있는 찻집을 열었다고 하셨다. 꽃차는 나와 함께 전문가 과정까지 거금을 주고 배웠는데, 나는 배우는데 그쳤지만 마중물 언니는 창업까지 한 것이다.

10년 동안 가꾼 뜰이 이제는 아담한 숲이 돼 창 넒은 거실에서 바라다보면, 황혼의 인생 대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곁들여져서 이색적인 찻집이 되기에 충분조건이 된 것이다. 혼자서 호젓이 즐기기에는 아쉬운 뜰이었는데 누군가가 찾아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니, 마중물언니는 삶의 활기가 생긴 것 같다.

바깥 선생님 돌아가시고 한동안 의욕을 잃고, 손을 놓아서 어수선했던 뜰을 다시 매만지고 나무들 하나하나 요정이 요술봉으로 일깨우듯 건드리니 꽃나무들이 화답해 생기를 내뿜었다.
81세 언니가 수액이 오르는 꽃나무처럼 다시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인생의 봄날이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다시 봄을 맞고 계시니, 60대에 생의 오후 4시라며 허우적거리던 내가 화들짝 놀랐다. 지금 보이는 모습과 화려한 이력만 보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겠으나, 10년이 넘게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느낀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성실과 의지를 보게 돼 늘 박수를 치고 있다. 

마중물언니는 한때 부유함을 누리고 만끽했지만 남편사업의 실패로 집마저 경매 당했을 때, 
평생에 다시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싶더란다. 사업실패 후 식물인간처럼 무기력해진 남편대신 경제적 가장이 돼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다시 집을 장만했을 때, 너무나 좋아서 길가는 사람 누구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더란다.

유학중이던 아들과 딸의 학비도 감당해 독립된 인격체로 잘 성장시키고, 남편을 마지막까지 잘 봉양했고, 자유로운 몸이 된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순간이란다.

스스로 이룬 작은 왕국(집)을 소통과 생산의 요람으로 변화시킨 강렬한 삶의 에너지가 나이를 초월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부지런하고, 주체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생선배가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게 돼서 늘 내 삶에 대입해 볼 것 같다. 내가 무기력해지거나 타성에 젖을 때 나를 곧추세우게 해줄 이정표가 돼준, 마중물 언니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81세 대학생이 또 무슨 일로 나를 긴장시킬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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