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0)

 "땀 흘려 일하고, 맛난 점심 먹고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카드’로
 영화 보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온갖 종류의 복지제도가 많아졌지만 농촌여성인 내가 가장 즐겁게 여기는 혜택이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제도다. 몇 년 전에 생겨서 10만 원에 자부담 2만 원으로 시작했다가(제주도 기준) 지금은 자부담 없이 1년에 15만 원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카드다.

월로 나누면 1만2000원 정도인데 돈으로 치면 그리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 카드는 온전히 나를 위해, 나만이 쓸 수 있는 카드라 각별하다. 식당이나 서점, 공연, 영화관, 스포츠센터, 미용, 병원 등등... 웬만한 곳에서는 다 쓸 수 있다고 표시돼 있지만 막상 사용하려고 하면 가맹점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제한을 받기도 하는데, 알뜰하게 잘 쓰면 소소한 행복을 크게 누릴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공짜돈(^^)이 생겼다고 이웃지인들과 식당가서 한턱내고 했는데, 이 알토란같은 돈을 좀 더 가치 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거금이라고 못 사던 화보집을 사던가, 명품 문구류를 사기도 하고, 1년에 몇 번 영화를 가기도 하고, 매월 한 권씩 책을 사기도 하고... 온전히 나를 위해 돈을 쓰는 즐거움.

내가 미용에 관심이 많았더라면 고급진 미장원에서 부티나는 피부미용도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1년에 한 번만 미장원을 가는 사람이라 두툼한 화보집을 소장하게 된 포만감만으로도 내 삶이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든다.
살다가 보면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그리 많지 않았다. 쓰고 남는 돈은 늘 없었으므로, 적은 돈으로 여러 명의 가족이 알뜰히 살아내는 신공을 발휘하다보면, 엄마인 나는 후순위가 돼 나를 위해 책 한 권을 사는 것도 고민하게 되는 소시민의 삶이었다.

그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늘 가족들 뒷바라지가 우선이었던 엄마의 삶에서 나만이 온전히 쓸 수 있는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카드’는 만 원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줬다. 나라 살림살이가 복지혜택이 과해서 빚더미에 올라앉을까 걱정이 많지만 행복바우처카드 정도의 복지는 좋은 것 같다.

농사를 짓다보니 직장인처럼 매월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지 않고 수확기에만 한 번에 돈이 들어오다 보니 나눠 잘 써야하는데, 몇 달은 그런대로 여유롭다가 몇 달은 가뭄 든 것처럼 살게 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지속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리기가 쉽지 않아서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스크림처럼 달달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충전하기도 하고, 지혜 가득한 한 권의 책으로 마음의 양식을 쌓으면 허기가 가라앉는다.

농부의 일상은 거의 혼자서 일하는 작업이라서 스스로 잘 조절을 해야만 한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배움하러 가고, 한두 번은 지인과 함께 점심을 사먹고, 카페에 가서 수다도 떨고, 그리고는 돌아와서 시간을 정해서 목표한 일을 한다. 사회적동물인 인간이라 말도 얼마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다양한 유튜브를 틀어놓고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데, 일을 하면서 좀 더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도 오전에 땀 흘려 일하고, 시장이 반찬인 맛난 점심을 먹고,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카드로 영화 ‘기적’ 한 편 보고, 그러면 오늘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이만하면 족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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