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13)

아이들 추석빔 입혀
전통도 잇고 다시없는
추억도 심어줬으면...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마구 흔들어도 면면히 흐르는 고유의 미풍양속을 무너뜨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추석명절 분위기를 보니 그렇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다음달 3일까지 연장됨에도 가족 간의 만남과 명절의 즐거움을 가로막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그 만남들이 더욱 소중하고, 즐거움도 더욱 만끽하는 듯하다.

추석(秋夕)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명절로 연중 최대의 ‘행사’였다. 신라도성을 두 패로 나눠 편을 짜고, 한 달 동안 길쌈대회를 해 팔월 보름날 심사했다. 지는 편이 술과 밥(酒食)을 이긴 편에게 대접하며 가무(歌舞)와 온갖 놀이판을 벌였다. 이를 가배(嘉俳)라 했고, 추석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실제로 추석 무렵에는 대부분의 곡식이나 과일들이 아직 익지 않은 상태지만 추수 전, 미리 수확해 제사 지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 추석의 본 의미다. 더불어 농사일도 끝냈고, 가을걷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좋은 날씨에 성묘도 하고 놀면서 즐기는 명절이었다.

추석하면 마을마다 풍물놀이, 널뛰기 등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 풍습이 있었으나 이제는 송편과 추석빔이 겨우 맥을 잇고 있는 형편이다. 집집마다 온가족 둘러앉아 빚어 먹던 송편도 맛집을 찾아 사서 먹는 게 고작이고, 추석빔 역시 점점 그 모습이 퇴색해가고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추석이 계절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추석 전날 왕비가 여름옷을 벗고 가을 옷으로 갈아입으면 추석날 궁중 모든 여인들의 옷이 바뀌었다. 일반 가정에서도 아이들은 울긋불긋 예쁜 색깔의 새 옷을 입었으며, 어른들도 단정한 차림으로 조상과 어른들께 예를 다했다.

이제 추석빔뿐만 아니라 우리 옷의 본연의 기능 자체가 바뀌고 있는 듯하다. 추석 즈음 상가 한 편에서 앙증맞은 아이들의 한복들이 소비자들을 유혹해도 선뜻 사는 사람도, 추석이라고 한복을 입고 나오는 아이들도 별로 없다. 그냥 눈으로만 추석빔을 보았을 뿐이다. 또한 추석 명절이라며 TV가 우아한 한복차림으로 화면을 채워줘, 시청자들은 그들을 통해 추석빔을 느낄 뿐이다. 명절이 아니어도 한복은 이미 사극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보는 옷’이 됐다.

그래도 아직은 ‘입는 한복’의 기능이 남아있다. 결혼식과 고궁이나 한옥마을 등에서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즐기는 모습이다. 한복문화를 즐기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극중의 주인공이 되어 놀 때 입는 ‘놀이 옷’이 된 것이다.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 옷이 사라지지 않고 ‘입는 전통복’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느끼게도 한다.

‘과거’는 슬펐어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아름다웠던 기억이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고운 추억으로 영혼까지 위로한다. 생활 형태가 달라졌으니 옷도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어렸을 때 입었던 아름다운 우리 옷은 그것을 마련해 주셨던 부모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감미로움으로 남는다.

어려운 삶으로 지치고 힘들 때, 사랑으로 지어주셨던 추석빔의 힘이 얼마나 큰 용기를 줄지 모를 일이다. 여건이 어려워도 아이들에게만은 이런 추석빔을 입혀 전통도 잇고 다시없는 추억도 심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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