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신 홍
본지 편집위원
前 축협중앙회 연수원장

 

지난 2월16일 우리나라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던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했다.
고인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순간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표상(表象)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김 추기경이 살아온 발자취와 죽음을 전후해 보여준 사랑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착하게 살다 복되게 죽는다
조선일보 만물상(2월18일)에서 선종이라는 말의 유래를 읽었다.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로서 중국에서 가져온 한문 교리서를 번역·보급하는데 온 몸을 바친 최양업(1821~1861)신부가 그 교리서에 나오는 ‘선생복종정로’ 즉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는 게 삶의 바른길’이라는 대목이 천주교에서 죽음을 뜻하는 선종의 유래가 됐다는 것이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는다’ 이 얼마나 듣기 좋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말인가? 우리 모두가 동경(憧憬)하는 삶과 죽음의 모습이다. 김 추기경은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살라’는 말을 남기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 빛을 보았습니다.’라는 신문 머릿글이 눈에 들어온다. 고 김 추기경이 기증한 각막이 70대 노인 두 명으로 하여금 밝은 세상을 다시 보게 한 것이다. 행동과 실천이 그 죽음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30년 동안 모신 노 운전기사는 ‘매우 바쁜 와중에서도 틈만 나면 달동네, 판잣집을 들르자 하셨다.’고 회고한다.


필자도 그분의 강론 말씀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소탈하고 유머 넘치는 멋있는 할아버지였다. 소탈함과 유머 속에서도 항상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 받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자고 했다. 이와같이 행동하고 실천하는 순간순간 삶의 흔적이 쌓여 오늘 우리 국민을 진정 눈물짓게 하고, 그 눈물 속에서 삶과 죽음이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이란 언제 어떻게 현실로 닥쳐올지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사고사를 당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죽음이 현실로 닥쳤을 때 김수환 추기경이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일갈한 성철 스님같은 마음을 지니면 얼마나 좋으리요!
인생을 달관한 성인군자도 아니요, 현자도 아닌 범속한 일상인으로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을 때의 기막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분노와 좌절을 거쳐 체념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는 죽음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길은 사랑을 나누는 삶을 평소에 생활화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자
서울 지하철 역구내에 붙어있는 사랑의 편지(오인숙)에서 본 글이다. ‘오늘을 소중하게’라는 글에서 우찌무라 간조는 ‘오늘 하루가 곧 일생이다’라고 했다. 공감되는 말이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 이어질 때 좋은 일생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오늘하루 최선을 다해 잘 사는 것만이 우리 범인(凡人)이 할 수 있는 ‘선생복종정로’의 길인가 싶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바른 길을 펼쳐 보이며 선종했다. 평소 그리던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길 기도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