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동물이 하는 짓은 다 한다 - 43

암술이 수술보다 튀어나와 있어 다른 꽃의 꽃가루를 묻혀 오는 벌의 배에 우선 닿도록 되어 있는 개불알풀의 꽃

 

제일 먼저 봄을 여는 꽃은 무엇일까? 진달래? 개나리? 아니면 매화나 버들강아지일까? 버들강아지나 생강나무, 그리고 매화나 산수유도 ‘봄을 맞이하는 꽃’이긴 하지만 ‘봄을 여는 꽃’은 아니다.
‘봄맞이’라는 이름의 풀이 있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봄에 가장 먼저 피어 봄을 맞는 꽃일 것 같지만, 앵초과의 작고 하얀 이 풀꽃은 생강나무며 산수유가 피고 뒤따라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는 4월이 되어서야 핀다.
봄을 상징하는 개나리나 진달래보다 달포나 앞서 봄을 여는 꽃이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개불꽃이라고 하는 ‘개불알풀’이라는 생뚱맞은 이름의 풀이다. 작은 열매의 모양이 마치 그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불알풀은 우리나라 어디든 흔히 볼 수 있는 풀로 2월 하순이면 양지에서 꽃을 피운다. 좁쌀보다 조금 큰 작은 풀꽃은 벌이 외출을 시작하는 따스한 한낮에야 활짝 핀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운데에 암술대 하나가 약간 크고 양편으로 수술이 각각 한 개씩 돋아 마치 삼지창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벌이 꽃에 앉는 순간 우선적으로 암술이 배에 닿도록 되어 있다. 벌은 다른 꽃에서 날아옴으로 다른 꽃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순간적으로 수정된다.


잠시 들여다보면 날아와 앉는 꿀벌의 뒷다리에는 벌써 하얀 꽃가루가 좁쌀만큼 매달려 있다. 이른 봄이라 다른 꽃은 피어 있지 않아 작은 꽃은 이때가 벌의 도움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딴꽃가루받이를 못하면 꽃이 닫히면서 양쪽으로 벌려 있는 수술을 꽃잎이 압박해서 암술머리에 수술이 닿도록 한다. 제꽃가루받이라도 해서 씨를 많이 맺도록 하는 번식전략을 쓰고 있다. 이렇게 자연에서 ‘남의 남편 우선, 내 남편 뒤에’를 하는 식물은 분꽃, 채송화, 진달래 등 매우 많다. 식물이 바람을 피우는 데는 깊은 뜻이 있다. 다양한 유전자를 줌으로써 변덕스런 자연에서 자식들이 잘 살게 하려는 어미의 깊은 사랑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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