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50)

‘여름철 남방 농촌에서 많이 보는 풍경인데, 점심 때쯤 돼 논에서 김을 매던 농군들이 새참으로 논두덕에 앉아 막걸리들을 먹는다. 뻑뻐억한 막걸리를 큼지막한 사발에다가 넘싯넘싯하게 그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벌컥 한 입에 주욱 다 마신다. 그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쓰윽 씻고 나서 풋마늘 대를 보리고추장에 꾹 찍어 입가심을 한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전북 옥구군 임피가 고향인 소설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이 쓴 수필의 한 대목이다. 한여름 벼논 김매기철 농부들이 들에서 막걸리 마시는 새참 정경을 걸찍하게 그렸다.
지리한 장마가 물러간 뒤 이맘때 쯤이면 고향 마을은 인적없이 고요한 정적에 싸여 땡볕으로 펄펄 뜨겁게 달아오르고, 매미·쓰르라미 소리만 하늘에 가득했다.

이때 이웃간 품앗이로 하는 일이 무논의 김매기, 즉 피사리다. 한낮 뙤약볕 무논에서 일하다 새참 때 막걸리 두어사발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그늘을 찾아 벌렁 누워 배통 내놓고 달디단 쪽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예전에 농주로 쓰던 막걸리는 멥쌀 뿐 아니라 형편이 좀 나은 집에서는 찹쌀을,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보리·밀·감자를 원료로 해서 빚었다. 찹쌀로 빚으면 찹쌀막걸리, 보리쌀로 빚으면 보리단술·보리막걸리라 불렀다. 농주 만들 때 쓸 누룩은 이른 봄 배꽃[梨花] 필 무렵에 띄운 것이라야 제 때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으뜸으로 쳤다.

그러나 이제는 두레며 품앗이, 새참풍경을 농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농주도, 횡하니 동네 구멍가게로 달려가 막걸리 네댓병 사오면 될 일을 신역 고되게 무에 일부러 담그랴 싶다. 땡볕 아래 열기 훅훅이는 무논에서 하던 피사리는, 이젠 고기능 제초제면 되고 병해충 방제 농약살포는 시·때 구분없이 드론이 해결해 준다. 가을철 농작물 수확도 이젠 농업용 수확로봇이 도맡아 하는 시대가 됐다.

농촌의 의·식·주 모두에 ‘도시’가 들어와 앉은 지도 이미 오래다. 그만큼 농촌이 도시화 되면서 편리함과 윤택함을 가져다 줬지만, 정(情)은 바싹 말라붙었다. 저녁 마실, 천렵이며 붕어·메뚜기 잡이 같은 시골정경은 다 사라졌다.

외양간에 승용차가 버젓이 들어앉은 풍경이라니… 도시와 농촌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도·농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도 오래됐다. 절대농지며 그린벨트라지만, 시골의 논·밭은 잠재적인 아파트 부지다.
그렇게 나에게 익숙했던, 그리하여 내게 늘 커다란 위안을 줬던 농촌-고향의 정경들이 나로부터 시나브로 하나 둘 떠나가고 있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고 했던가…
지난 날 우리의 정겨웠던 ‘농촌’이 지금,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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