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열 모
미국주재 대기자

2009년 새아침에 ‘농촌여성신문’ 독자 여러분에게 정중한 세배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기쁨이 늘 넘치시기 기원합니다. 이 새 아침에 태평양 건너 내 조국이 유별나게 소중하며, 그 조국이 요즘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경제난국 때문에 위기감에 휘말려 있다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위기감이 지나치면 자신감도 잃게 돼 그 때문에 또 다른 위기가 올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오늘의 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지난날 위기를 극복했던 현장을 되돌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6.25 폐허에서 일어선 국민
그 처참했던 6.25의 포화가 휩쓴 자리에는 잿더미와 깡통을 든 정쟁고아 뿐, 살 길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이 폐허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 치다보니 우리에게는 어느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생겼습니다. 이 저력을 되살린다면 우리는 오늘의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산전수전을 겪던 그 당시 우리는 우선 미군부대에서 불하받은 짚차의 엔진과 드럼통으로 ‘시발택시’를 만들어 유용한 운송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수집해서 가발을 만들어 수출했고, 중석(텅스텐)을 캐내 외화를 벌어들여 국가 경제개발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우리의 이같은 창의력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일터를 찾아 서독까지 갔습니다. 당시 서독에 갔던 광부들은 수 천 미터 지하에서, 간호사들는 영안실에서 굳은 시체를 알콜로 닦으며 외화를 벌었고 이를 조국에 송금했습니다. 월남전에선 피를 흘려가며 국익을 확보했고, 중동의 뙤약볕 건설현장에서도 땀과 눈물의 외화를 벌어들여 국가산업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우리의 불굴의 의지와 개척정신은 철광석도 없는 나라에서 세계 굴지의 제철소부터 건설했습니다. 우리는 이 철강을 갖고 세계에서 첫째가는 조선(造船)왕국을 만들었고, 창원에는 기계 공업단지를, 구미에는 전자 공업단지, 울산에는 석유화학 단지를 건설해서 공업입국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들 산업단지의 인력은 주로 우리 농촌에서 소를 팔아 공부시킨 우리의 아들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상아탑이 대신 ‘우골탑’이란 낱말도 생겨났습니다. 농촌에서 학교에 미처 다니지 못한 처녀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땀 흘리다가 밤에는 교복을 갈아입고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도 했습니다. 실로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역사’입니다.

 

자신감 갖고 위기를 기회로…
우리는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 인공기상실을 건축하고, 여기서 벼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개발해서 전국에 보급함으로써 5,000년 내려오던 우리의 한 많은 ‘보릿고개’를 허물어 비로소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마을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기력을 잃었던 당시의 우리 농촌에 ‘근면과 자조 협동’이라는 역동적인 기풍을 넘치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오늘의 난국과는 비교도 안 될 파란만장의 어려움을 돌파한 저력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재인식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자신감’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독자여러분! 농촌여성 여러분! 힘 냅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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