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생활개선연합회장 탐방-임현자 횡성군연합회장

빈손서 시작한 농사, 지금은 10여 가지 농사지으며 안정
코로나19로 어려움 크지만 활동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랄 뿐

▲ 임현자 회장은 횡성에서 빈 손으로 시작해 지금은 인삼을 비롯해 다양한 작목을 키우고 있다.

빈털터리로 시작한 횡성살이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부도위기에 처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임현자 회장 역시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IMF 1세대였다.
“저는 전라도 보성이 고향이고, 남편은 부산에서 만났죠. 거기서 생활을 쭉 했었는데 외환위기 때 빈털터리 신세가 됐죠. 그래서 남편 고향인 횡성으로 와 빈손으로 시작했던 게 거의 20년 쯤 되네요.”
처음 시작한 건 오이농사였다. 하지만 농사는 투기와 비슷해 한 가지 작목만으로 손에 쥐는 게 해마다 달랐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작목을 계속 늘린 임 회장. 지금은 단호박, 고추, 인삼, 더덕, 브로콜리, 벼농사, 애호박 등 10여 가지 농사를 지을 정도로 규모나 가지수에서 대농 축에 들 정도가 됐다. 그 중 가장 중점을 두는 농사는 단연 인삼이다. 청정하고 서늘한 기후의 횡성지역에서 인삼은 재배하기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올해 또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는 못 쓰고 있다. 상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만 5명이나 되는데 일손이 딸려 일당이 2만 원이나 올랐다고. 일손이 필요할 때면 사람을 따로 부르는데 그래서 인건비가 큰 부담이다. 한 번 오른 인건비는 내리기가 쉽지 않아 더 걱정이라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규모가 크다 보니 1년 내내 농번기라 제대로 쉴 여유는 없다고. 그래도 힘이 되는 건 역시나 가족이다.
“제가 오래 전부터 꿈꿨던 게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농업회사였어요. 그래서 작목도 다양하게 키운 거구요. 작은 아들이 농사를 이어받겠다며 농수산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걸 말렸어요. 지금 다니는 대학을 마치고 복수전공으로 농대를 다니라고 했어요. 대학을 마치고 농수산대학교에 들어가겠다면 그때 허락할 생각이에요.”

늦게 시작한 생활개선회
생활개선회 가입은 8년 전쯤에 했다는 임 회장. 여타 시·군 회장들과 비교하면 한참 늦은 출발이다. 연고도 없는 횡성에서 365일 24시간 농사만 짓느라 다른 활동에 눈 돌릴 틈이 없는 탓이었다.
“뭐든 제대로 하자는 게 인생의 신조에요. 외국인 근로자들이 처음 올 때 제가 시범을 FM식으로 보여줘요. 그래야 딴청 안 피우고 일이 몸에 익으니까요. 횡성군연합회원은 240명 정도인데 농사처럼 회장으로서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중점을 둔 게 교육이었다. 교육은 이름만 교육이어선 안 된다는 게 임 회장 생각이다. 농촌에서 살려면 제대로 된 교육은 필수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해서다. 동아리 활동도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난타와 건강체조는 일주일에 1번씩 모여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안타까운 건 코로나19 발생 이후 원활한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당초 봄에 회원들이 손수 농사지은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농업기술센터 직원에게 대접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하지만 다른 활동은 차질없이 진행했으면 하는 게 임 회장 바람이다. 횡성의 4대 축제인 한우·더덕·토마토·안흥진빵 축제에서 생활개선회는 주축이다. 축제가 열리는 면별로 참여하는데 토마토를 선별해 판매하거나 더덕에다 밥을 비비는 비빔밥 퍼포먼스 등이다. 
“제가 체력이나 열정은 넘쳐도 아직은 부족한 초보회장이에요. 그래서 회원들의 도움이 중요해요. 거기다 횡성군농업기술센터 신상훈 소장님이 격의 없이 편하게 대해주신 덕분에 여성농업인으로서 필요한 걸 지원해주니 큰 힘이 돼요. 빈털터리로 시작한 횡성살이가 이 정도면 인생역전했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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