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동물이 하는 짓은 다 한다-40

자작나무(상단)는 껍질이 흰색이라 겨울철 얼어터지지 않는다. 이점에 착안해서 사과나무(하단)에 흰 페인트를 칠해서 언피해를 예방한다.

 

지난봄에 사과로 유명한 충남 예산을 방문했다. 야트막한 구릉이 온통 사과 과수원으로 덮여 있는 오가면을 돌아보는데 어린 사과나무 줄기마다 흰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그 광경을 보니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교의 수목원이 떠올랐다. 미네소타주는 미국의 가장 북쪽이라 겨울 추위가 -30℃이하의 강추위로 유명한 곳이다. 20여 년 전에 이 대학에 뽕나무의 언피해(凍害) 연구차 한 해를 머문 적이 있다. 이 대학의 500ha 되는 수목원을 돌아볼 때 내 눈을 끈 것은 예산의 사과나무마냥 어린나무 줄기에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이었다. 관리인에게 까닭을 물어보았더니 얼어 죽지 말라고 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네소타처럼 추운 곳뿐만 아니다. 이보다 훨씬 따뜻한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리스의 끝이 안 보이는 오렌지 과수원에서도 하얗게 페인트를 칠해 놓는다. 오렌지가 될 정도로 따뜻한 로스엔젤리스도 미네소타와 같은 언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흰 페인트가 왜 언피해를 막는가?


백두산처럼 높은 산, 이른 봄에 나무줄기의 남쪽 면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20~30℃나 된다. 낮에는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강한 햇볕에 화상(火傷)을 입을 정도다. 따가운 볕을 쐬는 나무는 봄이 온 줄로 착각하고 물을 빨아올린다. 허나 밤이 되면 기온은 영하 10℃이하로 곤두박질쳐서 물로 채워진 줄기는 얼어 터져버린다. 화상과 동상(凍傷)을 동시에 당한다.


그런 고산의 숲을 넓게 차지하는 나무가 있다. 하얀 껍질을 가진 자작나무나 사스래나무다. 이들로 해서 고산지대의 숲은 마치 백악(白堊)의 성처럼 아름답다. 하얀 껍질은 햇빛을 반사시켜 화상을 피한다. 줄기가 서늘하기 때문에 물도 올라오지 않아 밤 동안 얼어터지지도 않는다. 자연에 적응해 줄기가 하얗게 진화한 자작나무나 사스래나무들만이 자손을 퍼뜨리고 살 수 있어서 제 세상을 만들었다. 어린나무에만 칠하는 것은 어릴 때는 껍질이 얇아서 쉽게 얼고 터지기 때문이다. 높은 산뿐만 아니라 평지에서도 얼어터지는 일은 일어난다. 과학자들은 이런 나무의 지혜를 간파해서 언피해를 예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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