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임 순천대 명예교수․사회학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도 목숨 걸고 싸웠다.
자신의 맡은 일에 헌신해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구했다.

양성평등의 21세기에는
여성들이 세상을 바꾸는데
앞장서게 될 것이다.
여성이 바로 변화를 선도하는
미래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박옥임 순천대 명예교수․사회학

농민들에게 있어 6월은 매실 수확과 모심기로 가장 바쁜 농번기다. 무엇보다도 6월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뤄낸 6월 항쟁의 달이기도 하다.
지난 6월7일은 우리 독립군을 토벌하러 두만강을 넘어온 일본군 ‘월강추격대’를 통쾌하게 무찌른 봉오동전투가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우리 독립군이 일본의 정규군을 물리친 최초의 대규모 승리였기 때문에 이제라도 단순히 봉오동전투라고 하기보다는 봉오동 독립전쟁으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여성들은 농사를 도맡아 하며 독립군에게 가장 필요한 식량과 의복 등의 보급물자 마련에 주력했다. 그리고 독립군의 무기구입에 필요한 군자금 모금이나 전달에 헌신했다. 그뿐 아니라 전투의 최일선에서 싸운 경우도 많다. 다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기리지 않았기 때문에 묻혀있을 뿐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잔 다르크 정정화(1901-1991) 선생은 시아버지 김가진 선생과 남편이 상해로 망명하자 목숨을 걸고 독립자금을 조달했고, 임시정부의 모든 독립운동 준비작업에 깊숙이 개입하기도 했다. 신정숙(1910-1997) 선생은 최초의 여성 광복군으로 1년 6개월의 군사훈련을 받고 전투공작과 유격대원으로 활약했다. 신 선생의 활약에 중국의 장개석은 “한 명의 한국 여성이 1천 명의 중국 장병보다 더 뛰어나다”고 극찬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로서 돌아가실 때까지 나라를 위해 끝까지 헌신했다. 지복영(1919-2007) 선생은 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 김정숙, 조순옥 등과 입대해 제3지대에 배속돼 공적을 인정받아 나중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게다가 중국어 실력이 출중해 중국의 귀화 권유에 “비록 나라가 주권을 잃어 유랑생활을 하지만 반드시 독립할 것인데 무엇 때문에 그러겠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6월25일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군 간호부대는 한국간호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간호부대를 창설한 장경희(1918-?) 선생은 전쟁터에서 부상자 치료에 핵심인 간호장교단을 창설하고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특히 한겨울 추위와 기아의 절박한 상황에서 미군부대를 찾아가 전투식량을 공급받아 위기를 극복한 일화가 회자된다. 또한 부상당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환자복과 의료진 가운을 입혀 탈출시킨 일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이 오늘날 각 대학의 간호학과 발전의 기틀을 만들었다.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의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감염 예방과 치료에 관해 아주 차분하고 진솔하게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신뢰하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가로서의 자신감과 초인적인 헌신에 마음으로부터 존경심을 갖게 하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여성인가.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도 목숨 걸고 같이 싸웠다. 국가의 위기에 여성들의 영웅적인 참여와 빛나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 공적이 빛을 보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구조적인 제약 때문에 각 분야의 주요 공직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 여성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양성평등이 시대정신인 21세기에는 여성들의 저력이 세상을 바꾸는데 앞장서게 될 것이다. 여성이 바로 변화를 선도하는 미래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