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39)

# 농업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제때 일손(노동력)을 구하지 못해 한 해 농사(생산)를 망칠 판이다. 그것은 곧 도미노처럼 바로 생산량 감소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넓은 의미의 ‘식량대란’을 초래할 것이다.
코로나19 판데믹 초기까지만 해도 농산물 파는 것(유통)이 문제더니, 판데믹이 깊어지면서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고 나라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그자 이제는 일손을 구할 수 없어 정작 농사짓는 것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에서 비닐하우스 11동에 토마토 농사를 짓는 박모(50)씨는 당장 토마토 수확에 나서야 하는데, 토마토 딸 일손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경남 거창에서 사과 재배를 하는 임모(37)씨는 사과꽃 솎기작업에 외국인 근로자 10명 정도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 급한대로 내국인 근로자로 충당한다고 해도 하루 일당이 너무 비싼데다가 대부분 고령층이어서 작업속도에 한계가 있다.

또한, 경기도 포천에서 파프리카·오이·토마토 등 각종 하우스 농사를 짓는 정모(42)씨는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80세가 넘은 노부모에 처가식구까지 총동원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전국 곳곳의 농가들이 특히 4~6월, 배추·마늘·양파 등의 채소류는 수확을 앞두고 밑거름 주기와 비닐·흙덮기 작업과 배·사과 등의 과수나무 꽃가루 인공수정 등 집중적으로 일할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도 일손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자칫 하다간 농사를 갈아 엎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애만 태우고 있다.

# 이같은 농가 인력난은 외국에서도 우리와 다름없이 겪고 있다. 프랑스는 해마다 4월 초부터 3개월간 루마니아·불가리아 등의 동유럽과 모로코·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에서 흘러들어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딸기·블루베리·아스파라거스 수확을 차질없이 해왔는데, 유럽연합(EU-이유)의 국경봉쇄로 자국민 일손을 급히 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영국은 농가 인력난 해소를 위해 루마니아 노동자들을 특별전세기로 데려오기까지 했지만, 해마다 7만 명에 달했던 외국인 노동자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매년 3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에게 농산물 수확을 맡겨 왔던 독일은, 이제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까지 아스파라거스 농장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에서는 “도시의 푸드 뱅크(Food Bank)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그것을 생산하는 농가에서는 농작물을 폐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식의 언론보도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 정말, 코로나가 세계농업의 지형과 틀을 바꿔가고 있는 것일까. 자고새면 국제곡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이런 상황에서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해법은 없다. 결국, 이제는 경제(돈)로서의 농업이 아니라 산업시대 이전의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으로 지구촌이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저 먼 옛날의 수렵·채집시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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