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37)

# 어렸을 적,그 흔하디 흔한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봉이 김선달이 한양 장사꾼들에게 돈 오천냥을 받고 ‘금맥이 흐르는 강’의 물이라 속여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전설같은 얘기 만큼이나 허무맹랑 그 자체였다.

예전 고향마을에는 마을 앞에 도장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을 끼고 ‘앞샘·뒷샘’이 있어 200여호 집들의 식수원이 됐다. 특히 뒷샘물은, 아산만 갯벌 간척지에 터잡은 마을 임에도 짜지 않고 변함없는 달디 단 물맛 하며,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던 마을사람들의 생명수요 소중한 젖줄 이었다. 해서 애호박덩이 하나 들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애 어른 할 것 없이 물지게로 뒷샘물을 길어다 집안 물독을 가득 가득 채우는 일이 하루 중요 일과의 하나였다. 그 신역 고된 일은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뒷샘물을 식수원으로 하는 상수도가 설치되기까지 수십년간 지속됐다.

# 옛날, 1800년대 초에 서울에는 아직 수도시설이 없던 터라 물장수가 있었다. 특히 억척스럽기로 소문난 함경도 북청(北靑)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와 매일 한 지게(물 2통)에 돈 20전씩을 받고 주문한 집에 물을 배달해 줬다.

1876년(고종13)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서울에는 일대 개화물결이 바람처럼 일었다. 17세기에 20만 명 이었던 서울 인구는, 산업화로의 변화 바람을 타고 농촌인구가 대량 이입돼 1936년에 70만 명, 1948년에는 170만 명으로 불어났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살게 되니 당연히 청계천이며 정릉골짜기 물이 오염되고, 먹을 물은 물론  허드렛물도 많이 필요하게 됐다.

당시 북청 물장수가 물지게로 길어다 팔던 물의 수원(水源)은, 식수는 샘물, 대량용수는 한강물 이었다.
함경도 북청이 고향인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 1901~?)이 북청 물장수를 시로 그렸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 맡에 찬물을 솨아 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 북청 물장수.//물에 젖은 꿈이/북청 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 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시 <북청 물장수> (동아일보,1924)

# 지금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물장사 전성시대’다. 업계에서는 ‘생수 춘추전국시대’라고도 한다.
시장 전망이 밝자 식음료회사는 물론 제약사·제과회사와 이마트·홈플러스 같은 유통업체까지 생수를 팔고 나섰다.

한 시장조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 일반 생수 시장규모는 1조3600억 원으로 2014년의 6040억 원에 비해 2배 이상으로 급성장세를 타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생수제품 만도 250여 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국내 생수시장은 4년 안에 2조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그 부산한 성장세 밑에 숨겨진 사실 하나… 한 우물에서 이름만 다른 26개의 생수가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그 물’이 ‘그 물’인데 가격은 천차만별인 꼴이어서, ‘현대판 봉이 김선달’에 다름 아니란 걸 소비자들만 깜깜하게 모르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물장수들의 ‘장삿속’에 소비자들이 ‘비싼 입맛’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물은 그냥 다같은 물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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