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밥상 - 자연요리 전문가 이정란이 전하는 4월의 텃밭 & 요리 이야기

손수 가꾼 텃밭채소로 만든 자연요리를 선보이는 이정란씨가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옆집언니처럼 절기별로 자연이 무엇을 내주는지, 그 식물을 어떻게 키워 거뒀는지, 그걸로 무슨 요리를 할 지 조곤조곤 일러준다.

호락호락 하지 않은 텃밭가꾸기
때를 알고 올라오는 생명들에 경외감

▲ 코로나19로 인해 야외활동이 쉽지 않은 요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우엉·현미 주먹밥 도시락

매화꽃이 피기 시작할 즈음이면 슬슬 한 해 텃밭농사를 준비한다. 텃밭일지를 들춰보며 한 해 텃밭 일과 중 가장 중요한 ‘텃밭디자인’에 들어간다. 작년엔 껍질콩이라 불리는 ‘그린빈(Green bean)’을 5월 초 고추 모종과 함께 파종했다. 처음 그린빈을 파종했던 시기는 6월 초였는데 지인에게 받아 둔 씨앗이라 파종 시기가 적혀있지 않아 “나오지 않으면 말지...”라며 대충 몇 개를 고추밭 옆에 묻어뒀다.

별 기대 없이 묻어두었던 그린빈 씨앗은 일주일도 안 돼 떡잎이 올라오더니 한 달 정도 지나 줄기를 뻗으며 꽃을 피우고 50일 정도 지나니 생각지도 않은 많은 열매를 내줬다.
한번 재미를 보고 나니 다음 해에는 욕심이 생겼다. 서리가 끝나는 즈음 고추 모종과 함께 씨앗을 파종하면 좀 더 빨리 더 많은 그린빈을 수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가 부풀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텃밭을 가꾸는 일은 세상 쉬운 듯하면서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그린빈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지지대 삼고 올라야 하는 고추줄기가 속도를 맞추질 못했다. 그렇게 작년 그린빈 키우기는 수확의 기쁨보다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로 마무리가 됐다.

소중한 토종씨앗
올해는 토종씨앗으로 일부 파종을 시작했다. 작은 텃밭이지만 한 해 한 해 지나다 보니 매해 심는 작물들이 비슷비슷했고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도 잘 키워낸 작물에서 꽃을 보고 씨앗들이 맺는 걸 보게 되니 씨앗을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번 키워 먹고 끝내는 일회성 씨앗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는 씨앗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토종 씨앗은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으니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평소 토종 씨앗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있어 여러 종류의 씨앗을 나눔 받을 수 있었다. 구하기 어려운 씨앗이기에 텃밭에 바로 파종하지 않고 모종판에 씨앗을 넣어 키우고 있다. 모종판에 배양토를 채우고 욕조에 물을 받아 흡수되게 한 후에 베란다에 옮겨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화장실보다 베란다로 먼저 가게 된다. ‘토종 뿌리갓’이 가장 먼저 발아가 됐고 그 다음 ‘토종 화성 홍파’가 그 다음으로 올라오고 있다. 작고 여린 것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들여다보고 챙기다 보면 그 순간 나는 그들의 엄마가 된다.

때를 알고 올라오는 생명들
며칠 전 오랜만에 텃밭을 찾았다. 작년 여름 씨앗을 뿌려두었던 가을 당근 그리고 시금치, 루꼴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모두 무사히 살아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가을 아이 손가락만 했던 당근은 벌써 어른 손바닥 크기로 자라 있었고 겨울을 이긴 루꼴라는 진한 초록 잎이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쑥, 꽃다지, 냉이꽃이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이제 곧 민들레, 부지깽이, 질경이, 머위, 돌나물, 쇠뜨기 등이 자신의 시간에 맞춰 올라오겠지... 사람이나 식물이나 자신의 때를 알고 사는 이들에겐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지는 듯하다. 남들을 바라보며 헉헉대지도 않고 자신의 영역을 위해 남들을 헤치거나 아프게 할 이유도 없다.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냥 그렇게 되돌아간다. 돌아갈 때를 아는 이들에게 조급함이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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