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추억이 되고
정신적 유산이 된다"

‘까톡까톡’ 아침부터 핸드폰이 울리는 게 사위가 손자녀석 사진을 올리나보다. ‘어린이집 작은발표회’라는 현수막 아래 왁작 떠드는 소리와 함께 두 줄로 선 아이들이 노래하며 율동을 하는 동영상이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키 큰 손자는 소리를 내는지 마는지 겨우 입만 달싹이며 동작도 소심하게 흔드는 둥 마는 둥이다. 사진을 찍는 사위도 안타까운지 “도후 파이팅!”하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해도 흘끔 댄다. 동영상을 들여다보는 우리까지 애가 탄다. “쟤는 도대체 누굴 닮았지? 집안에선 대통령짓을 다 하면서~ 방안퉁수야”하며 남편을 쳐다보니 쓱 입꼬리가 귀에 가서 걸린다. 하필이면 할아버지 생일에 태어나서 방점 하나를 찍더니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것도 꼭 닮았다.

손자가 태어나면서 우리 가족은 더 자주 만나게 됐다. 딸네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사돈내외가 주중에 돌봐주고 일요일 하루는 우리 몫이다. 나는 시골에서 제철에 나는 여러 가지 채소며 열매를 검정 비닐에 넣고 촉감을 통해 이름 맞추기도 하고, 호두알로 구슬치기도 하고 할머니표 마술도 한다. 손자는 공 던지기 게임을 하면 온 몸에 땀투성이가 되고, 거실 바닥에 세계 각 지역에 사는 동식물을 전시하기도 하고, 레고 블록으로 이것저것 만들다가 이야기도 섞어 만들고, 책도 읽고 TV도 본다. 최근에는 게임을 하다가 새로운 게임을 제안하고 만들어서 해보는 걸 좋아한다. 똑 같은 걸 되풀이하기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스스로 즐거워한다. 매주 폭풍성장을 하는 손자를 보면서 후진 할미가 안 되려고 손주가 다 읽은 책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20세기를 살아온 우리 세대는 그랬다. 장을 만들 때 좋은 우리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잘 띄워서 정직한 된장을 만드는 것, 배나무에 자연 퇴비를 써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달고 맛있는 배를 생산하는 것, 근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큰딸은 숱한 장류를 만드는 집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부심을 느낄만한 맛을 만드는 일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것, 즉 1인 가구를 위해 소포장을 하거나 장에도 콩 외에 다른 재료를 첨가해 새로운 소스를 만드는 등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큰딸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생각을 실현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하며 고객과 소통하며 살고 있다. 사위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중 3일만 일을 한다. 작은 딸은 매일 나가야하므로 사위가 자기 아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최우선이란 선택을 한 것이다.
요즘 30~40대의 아빠들은 왕후장상을 꿈꾸지 않는다. 작지만 따뜻하고 소소한 가족 간 기쁨을 소중하게 여긴다. 가족 간 시간이 켜켜이 쌓여 추억이 되고 또 정신적인 유산이 되는 게 아닐까.

손자와 헤어질 때면 슬며시 “도후야, 괴산할머니 집에 같이 갈까?”하고 떠보면 요즘은 대답을 망설인다. “다음에요” 엄마 아빠와 헤어져야 하니 그게 힘든가 보다. 요즘 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서울로 병원에 다니다 보니 아예 도시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가도 손주가 언제라도 불쑥 괴산 할머니집에 가보고 싶다면 우리가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눈 내린 아침 마당에 크고 작은 동물의 발자국을 탐정처럼 돋보기로 비춰보며 발자국의 주인공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손자녀석의 좋은 외가로 여기에 남아야겠다. 사랑하고 이해하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세대로의 확장을 꿈꾸며 새해에는 손자와의 즐거운 미래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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