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ASF 발병으로 돼지 약 44만7000두 살처분

▲ 대대적인 살처분 이후에도 다양한 가축전염병은 종식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 지금의 살처분 방법만이 옳은 것인지 대안은 없는지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11월5일 살처분 정책을 반대하는 농가의 시위 현장.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으로 약 44만7000두가 살처분됐다. 예방적 살처분은 약 41만9000두로 94%의 비중을 차지한다. 발생농장 500m가 ASF의 살처분 범위이지만 공기전파가 가능하지만 백신이 도입된 구제역과 달리 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전염병과 달리 예방적 살처분이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하지만 2가지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살처분이 과연 가축전염병 종식을 위한 과학적인 방법인지, 그리고 살처분 과정에서 비인도적이면서 비위생적인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구제역으로 350만 두의 돼지가 살처분됐고, 2016년 AI로 3700만 수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20년간 1억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지만 구제역과 AI는 종식되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는 최근 ASF는 물론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발병 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행되고 있는 살처분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동물복지국회포럼과 동물자유연대 주최로 열렸다.

살처분 처리과정에서 비인도적·비위생적 사례 발생
대규모 살처분 이후에도 전염병 반복…백신 개발 서둘러야

연천 침출수 유출에서 보듯…
한수양돈연구소 정현규 박사는 동물복지와 사람을 위해서도 지금의 우리나라 살처분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박사는 “동물복지를 중시하는 유럽은 살처분 가축과 처리를 담당하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채택토록 해 이산화탄소에 의한 방법을 권장하고 있으며, 이는 혈액을 통한 전파 위험성도 최소화한다”면서 “살처분 이후에도 사체는 고온의 열처리와 탱크에 매몰해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며, 담당인력이 충분한 교육을 받도록 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질병의 전파를 차단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미 지난 11월10일 경기 연천의 매몰지에서 임진강 지류 하천으로 사체에서 나온 핏물이 유출돼 살처분 처리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매몰돼지를 처리할 대형용기 제작이 늦어져 그냥 쌓아두고 작업을 하다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긴급행동지침(SOP) 규정에는 당연히 침출수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정 박사는 “구제역은 공기전파가 가능하지만 백신 도입 후 살처분 범위가 발생농장과 인접한 농장에서만 실시되는 반면, ASF는 접촉에 의해 발병되지만 백신이 없어 행정구역 단위로 예방적 살처분이 실시되고 있다”고 밝혔다. SOP에 의하면 살처분 범위는 발생농장 반경 500m로 명시돼 있다. 이어 “살처분 목적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 동물피해를 차단해 더 많은 생명을 지키자는 것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어디에 있고, 얼마만큼 전파되는지를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 조언을 토대로 행해져야 한다”고 정 박사는 주장했다.

파주환경운동연합 노현기 의장은 과도한 축산과 사육이 살처분 반복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노 의장은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의 분뇨가 무단으로 하천으로 방류되거나 첫 확진을 받은 농가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무허가 소규모농가가 있었지만 정부는 파악조차 못했다”면서 “연천의 침출수 유출 사건은 질병관리본부가 19만 마리를 짧은 시간에 살처분하라고 독촉해 길거리와 하천에 돼지피가 유출되는 등 오히려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살처분 시 무차별로 살포되는 방제약품도 문제라고 노 의장은 밝혔다. 매몰처리 시 뿌려지는 방제약품과 사체로 인한 토질과 인근 하천의 변화도 점검해야 한다는 노 의장은 야생멧돼지 바이러스 감염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어 그만 죽이고 중간평가를 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침출수 사건 이후 농식품부와 환경부, 지자체는 합동점검반을 꾸려 ASF 매몰지 101곳에 대한 일제점검에 나섰다.

막연함 아닌 과학적 뒷받침 있어야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사회변화팀장은 “ASF 발병 이후 이낙연 총리는 과도할 정도로 방역조치에 나서라고 명령한 이후 500m 이내에만 살처분하도록 한 규정이 있음에도 발생지 행정구역 전체로 범위가 임의로 확대됐다”면서 “발생원인과 전염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검토도 없이 이뤄지고 있으며,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가스법·전살법(電殺法) 등으로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도록 정하고 있음에도 일부 현장에서 생매장 사례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SOP의 살처분 방법에 의하면 ▲구덩이 설치 ▲구덩이 안까지 완만한 경사로 설치 ▲비닐을 덮고 흙으로 밀봉 ▲절명 확인 후 사체 처리 등을 준수토록 하고 있다.

채 팀장은 “2017년 강창일 의원이 살처분 시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질소를 사용토록 하는 동물보호법을 발의했지만 농식품부가 비용을 이유로 반대했다”며 “살처분은 인간에게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는 만큼 예방적 살처분 시 과학에 근거한 규정 세분화와 임의 확대를 금지하고, 고통 최소화를 위한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살처분 시 컨테이너와 질소가스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박주은 변호사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은 예방적 살처분을 ‘전염병이 퍼질 것으로 우려되는’이란 조항은 모호해 요건과 절차, 집행방법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면서 “백신정책을 적극 도입해 불필요한 살생과 예산낭비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SOP 역시 정부가 스스로 지침을 어기는 것도 문제라고 박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변화무쌍한 가축전염병 특성에 맞게 SOP를 신속하게 변경하고 이를 근거로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해야 하며, 질병별로 세분화해 예방적 살처분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식품부 장관이 살처분 범위 확대 시 가축방역심의회 자문을 받아 결정토록 하고 있지만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에 박 변호사는 가축방역심의회를 가축전염병 예방 컨트롤타워가 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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