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남 강진 ‘비채원 농장’ 이철규 대표

▲ 이철규 대표와 아내 정영희씨가 수확이 끝난 단감나무를 살피고 있다.

유기농업기능사 등 ‘자격증 4개 따고’ 귀농
경험은 매뉴얼로 기록, 기억만으로는 안 돼

다양한 교육에 참여
인적네트워크에 신경 써야

미래지향적 작목 선택해
시설규모 더 확대할 터

전남 강진은 파도와 산세가 거칠다. 그 토양이 다산과 시인 영랑을 키워냈을까. 고려청자의 찬란한 비취빛을 그려냈을까. 다산이 4년여를 머물렀다는 사의재(四宜齋).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은 지금도 강진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념의 발길이 그렇게 다산 초당을 지나 강진만 바다와 주작산 자연휴양림에 가까워질 때면 야트막한 산과 들녘이 펼쳐진다. 그 숲속 산길이 끝나갈 무렵 잘 가꾸어진 고추밭과 단감 밭이 옹기종기 한눈에 들어온다.

‘비채원’ 농장(대표 이철규·53·전남 강진군 신전면 신전로)이다. 단감농장 1만5737㎡(2500평)과 고추 등 채소밭 8,231㎡(4700평). 이철규 대표(53)가 지난 2014년 6월 귀농과 함께 일꾼 제2의 터전이다.
“원래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남들처럼 대학 졸업하고,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했지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귀농이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생활 틈틈이 농업관련 공부를 했습니다. 농업관련 자격증만 귀농 전에 4개나 땄으니, 나만큼 준비된 귀농인도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농산물품질관리사’ ‘유기농업산업기사’ ‘유기농업기능사’ ‘종자기능사’ 자격증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표는 고향이 강진이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고향과 멀어지는 듯했다. 20여년의 직장생활을 잘 해왔던 아들이 갑자기 귀농을 한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
“귀농한다고 하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어요. 어려운 가운데 대학 보내고 직장도 다니는데 무슨 농사냐는 것이었지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마음이 한번 정해지니까 직장생활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아버지를 설득하고 귀농을 실행했습니다.”

▲ 트랙터 작업 중인 이철규 대표

이 대표는 귀농과 함께 단감과 고추를 선택했다. 나름대로 젊은 층에는 인기가 없지만 장기적인 수요가 가능하다는 판단과 함께 품종개량 연구도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지요. 지나치게 친환경으로 재배를 시작하다보니까 깜빡 병해충에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도 맞았지요. 특히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이론과 실제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실패와 경험들이 나만의 매뉴얼로 자리잡아가면서 이제는 거의 박사급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장터로 나간 비채원 고춧가루

이 대표는 귀농의 가장 큰 스승은 현장경험이고 주변과 이웃의 도움, 그리고 교육프로그램을 충실히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고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바로 농사라는 것이다.
“교육을 충실이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치단체마다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신규 농업인을 돕기 위한 교육이 많이 있는데, 귀찮다거나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자칫 자만으로 흐를 수가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지식도 얻고 인적네트워크도 다지고, 정보도 얻고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농은 실패든 성공이든, 많은 교육의 내용이든, 이 모든 과정들을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생각과 기억만으로 농사를 짓는 데는 한계가 있지요. 자신만의 농사 매뉴얼을 갖춰나가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작물의 이파리 색이 언제 어떻게 변하고, 어느 계절에 어떤 벌레가 나와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등을 관찰하고 기록해두어야 같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귀농 6년차에 접어든 이 대표의 농장은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고추와 단감을 주작목으로 하면서 시금치 등 하우스 채소 일부를 생산했다면, 앞으로는 더 미래지향적인 작목의 개발을 해내는 것과 함께 원예시설 규모를 더 늘릴 계획입니다.”
돌아오는 길목의 사의재(四宜齋) 앞마당은 다산의 고독처럼 가을낙엽이 뒹굴고 있었다.

폭설에 갇혀/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사의재에 앉아 시 몇 줄을 읽으면/아아!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그리움도 남해 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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