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한국인 DNA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어머니의 정’...

작은 딸이 회사일로 남쪽을 돌아오는 길에 진해에 가서 외할머니 산소를 찾아갔단다. 아직도 외갓집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 푸른 이끼가 여전하고 초록대문 아래 마당 깊은 집도 그대로였다고 핸드폰에 문자와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근무를 나갔고 2년 6개월 동안 친정 진해에 내려가 엄마 곁에서 두 딸을 키웠었다. 그리고 애들이 다 자란 뒤에도 친정엄마는 맞벌이하는 우리 살림을 맡아하느라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 우리와 함께 사셨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중략)/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시인 조지훈이 절친 박목월에게 지어 보낸 ‘완화삼(玩花衫)’이란 시다. 우리 문화에서 정(情)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찾을 수 없는 가장 한국적인 특성이라고 한다. ‘정’은 ‘사랑’이나 ‘친근감’과 가장 비슷한 감정이지만 한국인에게는 다르다. 그러나 정작 정이 뭐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난 우리 고유의 정서인 정을 ‘다른 사람이나 주변 대상과 내적관계를 능동적으로 맺어 이해타산 없이 순수하게 상대에게 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이슬비에 옷 젖듯, 오랜 세월 속에서 함께 하면서 생겨난 애착이나 감정의 연대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리의 고유한 정은 어디서 왔을까?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우랄산맥 동쪽으로 터키, 중앙아시아, 몽고를 거쳐 만주, 한국, 일본에 분포하는 어족을 우랄알타이 어족이라 부른다.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도 이와 비슷해서 중앙아시아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한반도에 정착한 것인데, 우랄알타이어족은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은 이동성, 집단성, 전투성으로 한 부족을 이루고 유목을 위해 거주지를 옮겨가면서 다른 종족과 만날 때는 전쟁을 하며 살아가야 했다. 남자들은 전쟁과 먹이 사냥으로 둥지를 떠나 있었고 집단을 이루는 공동체는 어머니가 중심이었다. 어머니가 부족의 공동체를 양육하며 보살피며 지켰다. 그러니 유목민의 연대감은 ‘정’이었고 이 모든 정은 모성으로부터였다. 그래서 한민족의 핏속에는 모정(母情)의 DNA가 여전히 흘러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학 1학년 가을학기 시작 무렵, 나는 학보사의 주문으로 급하게 수필을 써야했다. 복도에 서서 보이는 대로 첫 줄에 ‘캠퍼스 마당에 줄지어 선 사르비아가 가을 식탁 위 고추장처럼 발갛다’라고 적었다. 그렇게 시작한 별 볼 일 없는 짧은 글에 전국 뭇 남성이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와 너무 당황한 적이 있었다. 태어난 이후로 그렇게 많은 편지와 뜨거운 반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빨간 고추장’ 때문인 것 같았다. 고추장으로 연상돼 불러온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아니겠는가! 한국인의 DNA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어머니의 정’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벌써 돌아가신지 5년이 넘은 할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손녀의 발걸음도 죽음이 갈라놓지 못하는 모정 때문이리라. 할머니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눈물로 가득 고이기 때문이리라. 지명만 나와도 가슴이 벌렁이는 내 고향 진해.
밤사이 비가 한 주름 내린 탓일까. 찬바람 불어 강물은 더 푸르러지고 보고 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은 붉게 단풍이 들고 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