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2)

가족주기(家族週期, Family Life Cycle)란 말이 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형성되는 가족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성장·결혼·출산·육아·노후의 각 단계에 걸친 일정한 주기(사이클)를 말한다.

이 가족주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개인 중심의 인생주기론과, 가정 중심의 가정주기론으로 나뉜다. 이중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인생주기론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주기는 다섯 단계로 나뉜다. (1)본인의 출생(독신 전기) (2)혼인(부부 전기) (3)자녀 출생(자녀 동거기) (4)막내자녀의 결혼과 동거(부부 후기) (5)배우자(남편 혹은 아내)의 사망(독신 후기). 이 과정에서 가족의 결합·분열과정이 반복되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그에 따라 삶의 형태도 달라지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 하느냐 이다. 삶의 질이 결정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전, 그러니까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그러한 인생주기의 모든 단계들이 대가족제도라는 우리 전통사회의 고정된 틀 속에서 이뤄졌다. 혈연으로 이어진 끈끈한 연대와, 유교윤리가 지배하는 가족의식으로 결속된 조부모-부모-자식의 3대가 ‘우리’라는 공간만이 존재하던 한 지붕 아래에서 모여 살았다. 그 안에서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는 ‘나’ 개인만의 독립된 공간(방)은 허락되지 않았고, 가족구성원 모두가 그러한 룰을 당연시 받아들였다. 지금 식의 표현에 빗대면, 그야말로 ‘꽉찬 둥지’였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전통 대가족제도라는 가족구성체계가 해체되고, 핵가족제도가 생겨났다. 도시 곳곳에 서구식 주거형태인 아파트가 생겨나면서부터는 주거생활 방식도 개인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통계청이 지난 9월18일 발표한 ‘장래 가구 특별추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자녀와 같이 사는 부모가구 수가 줄고(전체 가구 수의29.6%), 1인 가구 수가 전체 가구의 29.8%로 선두로 올라 선 것으로 집계됐다. 2017년의 가구 유형별 비중을 보면, 부부+자녀 가구(31.4%), 1인가구(28.5%), 부부가구(15.8%) 순 이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특히 저출산의 영향이 커 30년쯤 뒤인 2047년 이후에는 전체가구의 절반 이상이 자녀가 없는 가구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을 놓고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설왕설래 얘기가 분분한 ‘빈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며 ‘찬둥지 증후군(Crowded nest syndrome)’을 단지 여성들만의 정신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품안에 끼고 있던 자녀들이 대학진학이나 취직·결혼 등으로 독립할 때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이르는 ‘빈둥지 증후군’, 또한 그 반대로 취업난과 늦어지는 결혼 탓 등으로 집을 떠나지 않는 자녀들로 인해 겪는 갈등과 상대적 우울감을 이르는 ‘찬둥지 증후군’… 현대인의 정신적 질병으로까지 얘기되는 그러한 불안심리를 치유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관계분야 전문가들은, 자신의 삶의 중심에 ‘참 나’를 바로 세우고 소통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의 본래 이름이 거센 폭풍 속에서 발견했다 해서 ‘폭풍의 곶(Cape of Storm)’으로 명명 됐었다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인생의 방향타를 새롭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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