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총괄 기능 부재로 주먹구구식 운영 계속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적정한 예산서가 제출되는 등 성평등 예산의 성과관리가 뒷걸음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성평등 목표 달성에 부합되는 성인지 예산사업은 누락되고, 단순 성별 분리통계가 가능한 일자리 사업 등이 매년 성인지예산사업으로 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승희 의원(성북갑)이 기획재정부에서 제출받은 2020년 성인지예산안(기금운용계획 포함)에 따르면, 총 284개의 사업, 31조7963억 원의 성인지예산이 제출됐다. 2019년도 성인지예산보다 사업수는 2개가 늘었고, 예산액도 6조3763억 원(약 25%)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35개 중앙부처에서 제출한 성인지예산 대상사업을 살펴보면, 정작 성평등 목표 달성에 부합되는 대상사업은 누락되고, 성별분리통계도 없는 사업들이 성인지 예산 사업으로 제출됐다.

국회사무처는 2019년, 2020년 단 1건, ‘대한민국 어린이국회’ (1억2900만 원)를 성인지예산 사업으로 제출했다. 학교단위로 남녀구분 없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의 신청을 받아 법률안 작성 등 의회정치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수혜자별 성별 정보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게 국회사무처의 평가였다. 이 사업은 “어린이 의정교육의 기회가 설별로 평등하게 부여되는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점검이 요구된다”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검토결과에 따라 2020년에도 성인지예산사업으로 제출되었지만, 이 사업 외에도 국회 성인지 예산으로 다루어야 할 사업은 적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도 성인지예산 사업 발굴에 매우 소극적이다. 중선관위 예산사업 중 수십억 규모인 여성추천보조금사업과 여성정치발전사업은 누락시키고, 2019년, 2020년 단 1건, 소액예산이 편성된 여성정치참여교육(1억6800만 원)만을 성인지예산대상사업으로 제출했다.

왜곡된 성인지 의식을 근거로 성인지예산으로 제출된 사업도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환승센터구축지원’(247억 원)사업은 성평등과는 무관한 사업임에도, 대중교통 이용객의 성별 통계도 없이, 여성의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다는 주관적 평가를 바탕으로 성인지 예산사업으로 제출됐다.

현재 성인지 예산서는 기재부 주관의 상설협의체에서 대상 사업을 점검한 후 부처별 사업담당 공무원 개인의 자율적 판단으로 작성되고, 기획재정부가 이를 취합해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그나마 2019년 하반기부터 여성가족부 외에 법무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8개 부처청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배치돼 2021회계년도부터는 성인지예산 대상사업의 적합성 등이 자체 분석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성인지예산 총괄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성인지예산 담당관 부재(복지예산과장 겸임)로 성과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기획재정부는 성인지 예산제도 운영을 위해 관계부처와 연 3〜4회 상설협의체 회의를 개최하여 왔으나, 이것만 가지고는 해당 사업이 성인지 예산대상 사업으로 적절한지, 사업운영방식이나 예산은 적정한지, 그리고 이 제도의 가장 큰 목적인 성평등 효과가 있는지를 심층 분석하기는 어렵다는 게 유승희 의원의 지적이다.

유승희 의원은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성평등과는 무관한 엉터리 사업이 성인지 예산사업으로 제출되는 무능력한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국가재정의 성평등한 분배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기획재정부가 성인지 예산평가단을 설치, 운영해 지난 10년 동안 지적받아온 성인지예산사업의 문제를 철저히 평가하고 국가재정사업 전반의 성평등 효과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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