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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법재미있는 생활속 발명이야기-글 왕연중·그림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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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2  18: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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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에게 주어진 사명은 천연두 퇴치
천연두에 걸리면 고열과 함께 얼굴과 손발을 비롯한 온몸에 물집이 잡힌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물집에는 고름이 차오르고, 결국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지면 피부에는 움푹 들어간 흉터가 남는다. 흔히 ‘곰보자국’이라고 부르는 흉터다.
천연두의 역사는 사실상 인류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기원전 30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에서도 그 흔적이 나타났을 정도다.

천연두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으나 18세기에 영국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예방법이 발명됨으로써 근절됐다. 그 쾌거의 주역은 바로 에드워드 제너라는 영국의 의사였다. 제너는 1749년 5월17일 영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학을 공부한 제너는 1773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병원을 개업했는데 뛰어난 의술을 인정받아 명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 결과 1788년에는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 왕립학회에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천연두 퇴치였다.

우유 짜는 여성에게서 힌트 얻어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제너의 연구와는 별개로 우두 법에 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연구 대상은 동일했다. 한결같이 젖소에서 우유를 짜는 여성이었다. 이들 여성은 이상하게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너의 연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의학을 공부한 제너는 젖소에서 우유를 짜는 여성은 젖소와의 숱한 접촉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미한 수준의 천연두를 앓았고, 그래서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제너의 연구는 이 같은 추측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 추측의 사실 여부부터 조사·분석·연구했다. 그 결과 제너의 추측은 사실로 밝혀졌다. 여기에서 확신을 얻은 제너는 1796년 5월14일, 드디어 우두 법 실험을 실시하게 됐다. 실험대상은 14세 소년이었다. 제너는 우유를 짜는 여성의 손에 생긴 물집에서 뽑은 고름을 소년의 양팔에 상처를 낸 다음 주입했다. 아직 주사기가 발명되기 전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제너의 예상대로 소년은 우두 증세를 보이며 앓아누웠다. 그리고 며칠 만에 말끔히 회복됐다. 제너의 실험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소년에게 진짜 천연두를 주입했다. 소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천연두 면역력이 생긴 것이었다.

천연두 면역력에 대한 확신을 가진 제너는 이번에는 무려 23명에게 우두를 접종했다. 성공이었다. 제너는 이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해서 왕립학회에 제출했으며, 1798년에 정식 간행했다. 이 논문의 발간은 곧 지구상에서 천연두를 근절시키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는 1880년에 지석영이 우두법을 도입했지만, 그 이전부터 민간요법으로 실시됐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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