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여성농업인 육성을 위한 제언

■  강선아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청년농업인연합회장

‘젊은 농사짓는 아가씨’가 아닌
주체적인 청년여성농업인,
농촌사회의 변화와
편견 없는 시선 필요해

돌이켜보니 1남4녀 중 맏딸인 저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농사를 지은 모태유기농 농부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부모님의 뒤를 이어 후계농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혼자 농사일을 도맡는다는 건 더욱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농사짓는 아버지, 살림과 가공을 맡은 어머니의 뒤에서 할 수 있는 교육과 체험분야의 역할을 찾았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건재하셨기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확장도 필요했고, 젊은 아가씨가 농사일을 도맡기는 힘들기 때문에 주 업무 외에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는 농사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계를 사용하거나 주 작업은 남자어른들에게, 그외에 준비물을 챙기고, 작업을 보조하고, 손발을 맞추고, 새참과 식사를 챙기고, 뒷정리를 하는 역할은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게 당연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식사와 집안일을 하는 것도요.
시골에서 만나는 분들은 늘 “시집은 언제가나”, “데릴사위를 데려와서 농장을 물려받아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제가 직접 농사짓겠습니다”, “꼭 결혼을 해야 하나요”와 같은 대답을 하면 많은 걱정세례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때부터 차츰 왜 젊은 아가씨에게는 굳이 농기계 작동법을 알려주지 않는지, 왜 젊은아가씨에게는 ‘농업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에서 농사짓는다고 저를 소개할 때는 응원하는 목소리가 많은 반면, 시골에서 농사지으러 내려왔다고 할 때는 ‘젊은 여자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 걱정하는 시선들이 많습니다. 사회적으로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그에 따른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고 있는 반면, 농촌은 그 변화가 많이 늦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농사짓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여성들은  농촌생활에서 더 많은 문제점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좀 더 많이 농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청년여성농업인들이 원하는 농업농촌의 첫 번째 환경은 바로 ‘농사짓는 젊은 아가씨가 아닌 청년여성농업인으로, 한 명의 주체적인 농업경영인으로서의 인정과 편견 없는 시선’입니다.
서툴고 부족할 수 있지만 당당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농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 명의 농업인으로 인정해주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또한 제도적으로 후계여성농업인에 대한 인정과 주체적인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마련되길 희망합니다.
두 번째는 ‘일과 후 저녁 어느 편의점 앞 탁자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환경’ 입니다. 농촌의 특성상 해가 지면 시골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환경과 불안한 치안으로 활동의 제약이 많습니다. 또한 지역에 청년여성이 많지 않아 여가생활을 즐기는데 있어 주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마음 놓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교육, 보건 인프라’입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시기다 보니, 아이를 맡겨놓고 일을 할 수 있는 교육시설과 가까이 있는 전문의료 기관 등의 부재는 농촌에서 삶을 고민하는 큰 요소 입니다. 
네 번째로 ‘여성을 배려하는 편의시설을 갖춘 농업작업현장마련’이 있습니다. 넓은 들판, 산골짜기 등 자연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할 때 마땅한 휴게공간, 화장실이 없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젊은여성농업인들이 화장실을 참기위해 농작업시에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다섯 번째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조성’입니다.
과거의 여성농업인들은 농업과 가사노동,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사회활동의 제약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여성농업인들은 온라인과 SNS등으로 많은 정보를 얻고 소통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교육과 단체활동에 대한 참여의사가 높아 실제로 적극적인 활동으로 많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많은 청년여성농업인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개발하고 농업농촌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이 많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제는 청년여성농업인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와 인식의 개선에 함께 농업을 하는 동반자로서 농촌의 모든 어른들과 농업인들이 함께 해주시길 희망합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