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가 싫어졌어요 - 충북 제천 피해농가

■  기획특집 - 뾰족한 수 없나…과수화상병 문제와 해결책은?

▲ 새로 심은 사과나무가 과수화상병이 걸리진 않았을까?... 평생 과수원을 운영한 김동욱씨가 사과나무 잎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

원인 알 수 없어 답답하고 확산속도 빨라 공포스러워

“사과 농사 40년 동안 이런 과수화상병은 처음 겪어봐요. 사과나무 이파리가 조금만 타들어가듯 말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충청북도 제천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김동욱씨(남.65세)는 작년에 과수화상병이 번져서 과수원 전체를 갈아엎고 올해 인근에 땅을 얻어 사과 농사를 다시 시작했다.
“과수화상병 그거 참 무섭데요. 나무가지 하나라도 조금만 감염이 되면 과수원 전체로 번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더라고요.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어요. 원인을 알 수 없고, 또 치료약도 없다는 게 무엇보다 공포스럽습니다.”

사과나무는 5~10년 수령일때가 전성기다. 이 시기의 사과나무엔 상품성이 좋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가에선 이때가 제일 신이 난다. 그득하게 쌓인 사과상자를 직판하거나 공판장에 내다 놓으면 일 년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러나 이때 ‘과수 구제역이다’, ‘과수 에이즈다’라는 흉측한 별명의 과수화상병 확진이 나면 자식같은 사과나무를 모조리 땅에 파묻어야 한다.

상품성 좋은 충청북도 사과 명맥
꼭 유지하고 싶어

우림농원에서 생산하는 ‘백운사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김동욱씨도 수령 8~10년 된 사과나무를 모조리 베어내야 했다. “차마 훤한 대낮에 사과나무를 베어 낼 수 없어 밤에 혼자 과수원을 찾아 사과나무를 파묻었어요. 정성들여 몇 년씩 키워 정이 든 사과나무를 흔적도 없이 땅에 묻는 그 심정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김 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그래도 그래야 과수화상병 확산을 피할 수 있다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만약 이 과수화상병이 과일을 통해서도 전염이 된다면 전국으로 퍼지는 건 순식간일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죠.”

충북지역은 온도와 습도가 사과농사와 맞아 상품성이 좋은 과일을 많이 생산해 왔다. 농가들은 사과 직판을 통해서 그동안 많은 수입을 올려왔었다. 그러나 과수화상병이 한 번 과수원을 휩쓸게 되면 3~5년간은 과일을 생산할 수 없어 단골들을 놓치게 된다. 판로가 막히니 또 다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애로가 생긴다. 거기에 과일나무를 베어낸  과수원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그라스 등 퇴비용 작물을 1년 동안 심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과수 농가가 겪는 정신적·경제적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보상금 받아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 보면 속 터져
“속 모르는 사람들은 과수화상병이 한번 돌면 보상금을 챙겨서 좋겠다고 하는데, 보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들은 손이 묶이게 되는 셈이예요. 우리 과수원도 1년 조수익이 1억5천 정도는 꼬박꼬박 들어왔었는데, 보상금 4억5천을 받아도 새로운 농지 구입하고, 처음부터 어린나무를 심어서 수확하려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정도 손 놓고 기다려야 하니 손해가 막심합니다. 사람 사는게 매년 정기적인 소득이 들어와야 생활계획도 세우고 다음해 농사 준비도 하는데 보상금을 앞에 놓고도 기운이 빠지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평생 해 온 작물을 다른 작물로 바꾸는 것은 더더군다나 쉬운 일이 아니다. 과수화상병 피해는 보상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피해가 농가에 너무 크다.

▲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과수원이었다. 사과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대체작물이 자라고 있다. 충북 제천 곳곳에서 이런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부 적극 대처로
과수화상병 확산 막아주길

과수농가는 과수화상병이 왜 주춤하는지, 왜 발생했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저 충청도 지역이 과수화상병 균이 서식하는데 가장 적절한 환경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작업 특성상 작목반이 서로 과수농가를 돌면서 같이 가지도 쳐주고 상자에 과일 포장도 같이 합니다. 전정가위를 계속 돌려 쓰기 때문에 가위에서 전염이 될 수도 있고 벌레나 바람을 타고도 전염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농업기술원과 정부의 대책에 현장 농부의 경험을 전해주고 싶은 것이 김동욱씨의 바람이다. “만일 과수화상병이 충청도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그 땐 정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 될 테니 미리미리 대비해야죠. 올 여름은 무사히 넘기더라도 내년 여름은 또 어찌될지 걱정입니다.”
과수농가의 시름은 점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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