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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각오한 어머니, 평생 고생길”호국보훈의 달 특집 :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하다(김학규‧오광심 부부 자손 김일진씨에게 듣다)
민동주 기자  |  mdj02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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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8  17: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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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규‧오광심 독립운동가의 아들 김일진씨가 부모님 사진과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독립운동가 집안, 영광보다 ‘가난’ 대물림
교육 소외된 후손들 경제적으로 고립

독립군 양성하며 항일의식 고취
김일진씨는 독립운동가인 김학규‧오광심 부부의 외동아들이다. 그의 부친은 조선혁명군 참모장과 광복군 제3지대장을 지낸 백파 김학규 장군으로, 중국 만주에서 안으로는 혁명 역량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우방과의 유대 증진으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모친 오광심씨는 김학규 장군을 도와 만주에서 남경으로 농부로 분장하고 들어가 남경의 독립군 지도자들에게 만주가 위험에 처해짐을 알리고, 합동해서 독립전쟁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한 독립군 협력에 대한 보고서를 만주에 다시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직접 나서 200장 분량의 보고서를 외우고 혈혈단신으로 만주 독립군 지휘본부에 잠입해 외운 내용을 서술하며 독립군 협력을 이끌어냈다. 오광심 지사는 광복군의 어머니이자 동지였으며 제3지대의 비밀장교 역할을 해낸 것이다.

“부모님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쳤지만, 1948년 한국에 돌아와서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스승이던 김구 선생의 시해사건에 연루돼 15년형을 받아 마포형무소에 수감됐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당시 오광심 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독립운동을 했건만, 내게 돌아온 것은 동냥질이 다구나”라고 말하며 아들에게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삯바느질에 안 해본 일 없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수레를 끌고 동네의 소주 공장에 술찌꺼기를 받으러 먼 길을 가시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방 후에는 미군들이 가져다준 옥수수죽과 수제비를 얻어먹으며 근근이 살았습니다. 그때 독립군의 가족은 기초수급자만도 못한 생을 살았습니다.”

   
▲ 김일진씨는 김구 선생의 묘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유년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은 사진 한 장이 전부”라고 했다.

후손들, 사회적약자 탈출 요원
가난은 대물림됐다. 김일진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어머니의 노력으로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받았다. 목소리가 남보다 뛰어나다는 교회 집사의 권유로 성악을 배워 대학교에 진학했다.

“사립학교에 음악교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살림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연좌제로 인해 유학을 갈 수 없었습니다. 음악가는 유학을 가야 크게 성공할 수 있는데 여권발급이 불가능했습니다. 유학은 물론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옮기고 싶어도 신원조회에 걸려 불가능했죠. 사립학교에 근무하면서도 6개월마다 경찰로부터 사찰조사를 받아 직장에서의 수근거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일진씨는 연좌제가 폐지될 때까지 압박을 받으며 근무해야 했다. 한편으로 본인의 후배들은 유학을 가서 교수가 된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일진씨는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생계에 문제가 없었지만, 그가 ‘광복회’ 활동을 하며 만난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 있다고 전했다.

“독립운동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서 교육을 받지 못한 후손들은 현재 사회적 약자로 전락했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연금을 받아도 차상위계층을 지원하는 금액보다 못한 적은 돈입니다. 게다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연금을 받기 때문에 차상위계층 지원은 제외됩니다.”

그는 이마저도 1945년 전후로 연금이 2대까지 지원되다가 직계자손인 1대까지만 지원된다면서, 차라리 기초수급자 지원을 받으면서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알리지 않는 게 추세라고 말했다.

김일진씨는 정부에 부모님에게 3급인 독립장을 추서한 것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머니는 독립운동가로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많은 고초를 겪고 힘든 삶을 살다 가셨기에 자식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장군으로서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똑같은 독립장이라는 사실입니다.”

김일진씨는 이 같은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형평에 맞는 추서가 이뤄져야 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생계에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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