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

이제는 없어진 풍속들도 있다.
이는 생활사가 변화면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풍경이다.
현대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금도 설날을 맞아 먹고
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지내자.

▲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

정월(正月, 설)은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달의 첫 날로, 한 해의 최초 명절이자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삼국사기 <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의 설날과 비슷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설날 차례상과 집으로 찾아오는 세배 손님의 대접을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한다. 이 음식들을 세찬(歲饌)이라 한다. 차례상으로 차리는 세찬에는 떡국, 세주, 족편, 각종 전유어, 각종 과정류, 식혜, 수정과, 햇김치 등 여러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대표 음식으로는 떡국이 있다.

떡국은 언제부터 먹었는지 흰떡의 역사를 문헌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벼농사를 짓고 시루와 돌확을 사용했던 때가 기원전 4~5세기경으로 밝혀져 있으므로 이때부터 흰떡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 풍속에 설을 쇨 때에는 반드시 떡국을 먹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떡국에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떡국에 들어가는 흰떡은 멥쌀가루를 시루에 쪄서 길게 늘여 뽑는다. 이는 재산이 쭉쭉 늘어나라는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가래떡을 동전처럼 둥글게 써는 이유는 둥근 모양이 마치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과 같아서 새해에 재화가 풍족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궁중에서도 설에 떡국을 끓여 먹었는데 탕병(湯餠) 또는 병탕(餠湯)이라 불렀다. 일반적인 떡국과는 달리 떡은 멥쌀과 찹쌀을 섞어 가래떡을 만들고 국물도 닭, 꿩고기, 쇠고기로 우려내 사용했다. 가래떡도 어슷하지 않고 수저로 뜨기 편하도록 동전처럼 동글게 썰었는데, 떡국의 둥근 모양은 태양을 의미했다.

설날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풍속이 있는데, 설날 아침에 온 가족이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새옷으로 갈아입는데 이 옷을 설빔이라고 한다. 설빔은 각 가정에서 형편에 맞춰 준비했는데, 새날의 준비를 정성과 효성을 담아 시행한 풍습이었다. 예전에는 옷이란 것이 귀한 것이고 직접 집에서 해 입던 것으로 자주 만들 수 없던 것으로 새해를 맞아 온 가족의 설빔을 준비하는 것이 새해맞이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던 것이다.

또한,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 설날 이른 새벽에 대나무로 엮어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면 복을 많이 받는다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복조리라고 했다. 조리는 과거 농경국가에서 쌀알을 일어 담는 것이 그 해의 복을 일어 담는 것으로 상징한데서 온 풍습이다.
풍습 외에도 설날에 먹는 음식 중에 현재는 잘하지 않는 것이 세주(歲酒)다. 세주란 설에 쓰이는 술인데, 찬술이 쓰이며 가양주가 금지된 시대에도 세주만은 가정에서 담갔었다. 요즘은 청주를 대신 쓰는 경향이 있다. 설날 이 술을 마시면 병이 나지 않는다고 해 젊은이가 먼저 마시고 나이든 사람이 나중에 마신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먹는 음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다. 설날에 집안의 어르신들께 세배를 하고 조상의 묘에 성묘를 가는 등 여전히 하고 있는 풍습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하지 않는 없어진 풍속들도 있다. 이는 생활사가 변화면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풍경이다.
이번 설에는 내가 먹는 떡국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고 먹어 보는 것이 어떨까? “너 몇 살 먹었니?”라고 묻지 말고, “너 떡국 몇 그릇 먹었니?”라고 물어보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이번 설에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설 풍습을 가족들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의미 있는 설을 맞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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