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년특집 - 생활개선회 60년...농촌 생활개선 발자취

1958년, 전후 어렵고 궁핍한 농촌생활을 타개하기 위해 생활개선구락부를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농촌지역 의․식․주 등 생활개선 활동을 시작한 생활개선회가 활동 60주년을 맞은 뜻 깊은 해였다. 본지는 농촌생활 활력과 자기능력 개발, 여성농업인 권익 향상 등을 통해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농촌여성단체로 자리매김한 생활개선회의 60년 활동과 성과를 되짚어본다.

삶과 사람, 전통을 지키고
소통의 중심에서 살아 움직이며
미래농촌, 지속가능한 농업과
건강먹거리 보급에 노력하면서
뜻을 모아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여풍당당 ‘생활개선회’

 

 

생활개선회, 그 위대한 시작

1957년 농사교도법이 공표되면서 농촌생활개선사업이 시작됐고, 생활개선을 목표로 농촌의 의식주를 종합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농사교도법에 근거해 1958년 농사원(현 농촌진흥청) 소속의 가정교도원(현 농촌지도사)이 배출됐다. 가정교도원은 농촌여성들을 대상으로 의식주와 보건위생, 육아 등의 농촌생활 개선을 지도했다.
그러나 소수의 가정교도원들이 지도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생활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한 농촌여성들에 의해 학습단체인 생활개선구락부가 조직됐다.
생활개선구락부는 초창기 식량부족 해결을 위한 칠분도미 먹기, 분식·균형식 장려, 간이작업복 보급, 화장실·부엌 개량 등 생활개선 활동을 펼쳤다. 회원들은 농촌지도소의 보모교육을 통해 농촌여성의 가사와 농사, 육아를 해결할 농번기 탁아소를 운영하고, 분뇨를 발효시켜 얻은 천연 메탄가스를 가정용 취사연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농촌생활개선의 합리적·과학적 접근

생활개선구락부는 1977년 7월8일 국무총리령에 의해 부녀교실, 새마을부녀회, 가족계획어머니회 등과 함께 새마을부녀회로 통합됐다. 이때부터 ‘새마을부녀회 생활개선부’로 활동하게 됐으며, 1989년에 이르러 생활개선회 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운영됐던 농번기 탁아소는 1970년대 전면 확대됐으며, 체계적인 보모 훈련이 시작됐다. 한편으로는 1980년에 들어 농촌여성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농기계 훈련도 활발히 시행됐다.

농촌지도소는 식생활교육차를 운영해 주간에는 식품가공과 각종 요리법의 연시·교육·방송·전시를 했고, 야간에는 영화와 슬라이드를 상영했다. 좀처럼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농촌 오지마을 현장에서 진행되는 요리법 교육에 농촌여성들의 호응이 좋았다.
식생활 교육용으로 개조된 차 내부는 마치 주방과도 같았는데, 요즘으로 따지면 푸드트럭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식생활개선사업은 식생활의 서구화에 대응해 한국형 식생활의 정착과 쌀 소비 확대에 중점을 뒀다. 특히 1977년부터 시작된 농촌의 아동영양시범마을 육성은 1980년대에도 꾸준히 전개됐으며, 젖먹이아동과 임산수유부의 영양 섭취 개별지도, 아동의 정기적인 신장체중 측정, 영양식품 공급, 이유식 만들기 등을 중점 실천했다.
병조림 만들기 교육과 부엌의 위생을 고려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한편, 새마을부녀회 생활개선부는 이 시기 큰 개혁의 바람을 맞았다. 새마을부녀회로 통합됐던 1977년부터 1988년 동안에도 조직적 일체감과 활동은 통합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1989년 무렵 새마을운동이 약화되면서 새마을부녀회가 해산되고, 이 일을 계기로 생활개선회는 재정비해 독립단체로 첫걸음을 내딛었다.

 

 

높아진 농촌여성의 지위와 역할 확대

1990년대는 단순한 경작 위주의 농업생산 활동에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영농으로 전환되고, 도시로의 청장년층의 대거 이주가 계속되던 시기였다. 이 같은 경영 변화와 인구 변동으로 농촌여성은 영농의 주역으로 역할이 확대되면서 여러 우수한 여성농업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발벗고 나선 농가 부업활동은 농촌의 유휴노동력을 생산화하고, 농한기를 일소해 영세농가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농가부업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진행돼 수공예, 수편물, 홀치기, 죽세공예, 자개박이, 조화, 인조눈썹, 양잠, 왕골가공 등 다양했다. 이러한 부업활동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가 1980년대 들어 중단된 이후, 1990년대에 새롭게 ‘농촌여성 일감갖기 사업’으로 부활했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과제교육을 위해 1987년부터는 농촌여성 생활과학 기술교육이 실시됐다. 1989년에 도 단위는 농촌여성 특별교육 과정, 시군 단위에서는 농촌여성 과제교육 과정으로 정착됐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농촌여성을 육성하는 데 일조했다.

1990년대 생활개선회는 가장 중용한 변화를 맞았다. 새마을부녀회 생활개선부 해산으로 조직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유실된 회원들을 추스르고 자주적인 조직을 꾸려야 했다. 1994년 7월4일 사단법인 생활개선회가 창립됐고, 농촌여성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면모를 재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에는 농업인 건강관리의 필요성이 확산되면서 농작업 환경개선이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온도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닐하우스 중간 휴게실을 설치했고, 정자나무 아래 공터를 정비해 마을공동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한 과중한 농업노동으로 나타나는 농부증을 예방하기 위한 농업인 건강관리실은 주민들의 피로회복과 화합의 장이 됐다.

 

 

미래로 향하는 생활개선회

2000년 이후 여성은 농촌경제의 주체로 우뚝 서기 시작했다. 농촌여성 일감갖기 사업과 농산물 가공기술 향상으로 농가소득이 증대되고, 여성농업인 전문능력 배양 등 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생활개선회는 활동 60년 성과물 수집, 조직활동 가치 보고, 국회대토론회 등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가치 발굴을 위한 의미 있는 작업을 펼쳤다.

특히 2014년에는 10만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은 성금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 한국생활개선회관 건립 부지를 매입해 현재 건립을 준비 중인데, 농촌여성 중심의 교육과 창업 핵심기관, 컨벤션센터, 도농상생 허브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활개선회는 올해 활동 60주년을 기념해 ‘여성이 살고 싶은 농촌 만들기’를 주제로 국회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여성농업인의 직업적 지위 향상과 권익 증진을 위한 정책을 발굴해 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앞으로 정책을 주도하는 조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생활개선회는 이제 새로운 도약의 출발에 서있다. 미래 농업·농촌 발전의 주체로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앞장서 배우고, 취약계층 돌봄 등 사회복지 자원 역할, 자체 브랜드인 ‘농맘’의 활성화로 국민의 안전먹거리 제공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통일한반도 농업·농촌 발전의 조력자로서 북한 생활문화의 이해를 통해 협력방안을 사전에 준비하고, 농업·농촌문화의 민간교류도 준비하고 있다.
세계농업·농촌 발전의 동반자로서 생활개선회는 국제협력분과 설치와 활동 회원 정예화, ‘협력국의 해’ 선정 등 국제협력 역량을 키우고, 개발도상국가의 생활개선사업 전파를 위한 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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