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여행
굽이도는 강물에는 이산의 아픔이…■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기 연천
류미월 객원기자  |  rhyu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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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3  11: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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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m의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와 주변의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재인폭포.

노란 알곡을 맺었던 벼들이 잘려나간 들녘은 신성(神聖)하고, 빨갛게 타올랐던 단풍이 잎을 떨군 들녘은 침묵의 빛으로 사람에게 더 겸손해지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초겨울로 가는 길목에 경기도 연천지역에 다녀왔다.
연천은 숨겨진 보물처럼 역사문화 유적지와 자연 휴양지, 안보 체험지 등 볼거리가 많다. 남북 군사분계선이 팽팽하게 맞서는 천하무적 태풍전망대, 한탄강과 임진강 물줄기 따라 주상절리, 지질공원 등 자연이 주는 선물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뿐인가. 한 폭의 그림 같은 재인폭포의 비경 앞에 숨이 멎고, 전곡리 선사박물관, 전곡리 유적지는 과거로 우리를 데려간다.

연천군 군남면에 있는 옥녀봉 밑에 옥같이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을 옥계리(玉溪里)라고 하는데,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일부 이곳을 배경으로 했다. <장길산>은 1974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한 황석영의 역사 대하소설로 총 10권의 소설책으로도 발간됐다.
1970년대 민중운동의 전사로서 조선 후기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숙종 때 실재했던 인물 장길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길 위를 떠도는 유민 같은 파란만장한 광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강이 바라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니 임진강의 지류로 흘러들어가는 제법 너른 시내가 나왔다. 밝은 햇살을 받아 바닥에 깔린 자갈이 탐스럽게 비치는데 물 흘러내려 가는 소리가 귓전을 말갛게 씻는 듯하였다, 마을의 이름은 그대로 옥계(玉溪)였으니 물소리가 사방에 배어있는 듯하였다.   -장길산  6권 중에서 -

옥계리를 지나 재인폭포로 가는 길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낸 소설가 한무숙 선생 묘소가 있어서 잠시 참배하러 갔다. 묘지 앞에는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흙이 거칠게 파헤쳐진 채 훼손된 부분이 그대로 있어서 죽음과 삶이 대비되듯 안타까움을 줬다.
재인폭포에 도착하자 시원한 물줄기가 갈증을 녹여준다. 18m의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와 주변의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고을 원님이 한 재인(才人)의 아내가 절색인 것을 보고 재인에게 이 폭포에서 줄을 타게 한 뒤 줄을 끊어 죽이자 아내가 원님의 수청을 드는 척하다 코를 깨물고 자신도 자결했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2020년까지 재인폭포에 출렁다리를 건설한다니, 향후 이곳은 한탄강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서울에서 버스로 1시간 반이면 닿는 이곳은 그리 멀지 않다.

   
▲ 태풍전망대는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하다.

발길을 돌려 통일의 염원이 간절해지는 곳 태풍전망대 앞에 섰다. 서울에서 63km, 평양에서 약 140km 떨어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비끼산의 가장 높은 수리봉에 위치한 태풍전망대는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하다. 마침 날씨가 맑아서 망원경 없이도 군사분계선 너머 북한 땅이 보였다. 태풍전망대 주변에는 실향민의 망향비와 한국전쟁의 전적비가 전쟁의 아픔과 이산의 아픔을 대신 말하듯 서 있다.
발길을 돌려 닿은 곳은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에 있는 월파(月坡) 김상용 시비가 있는 곳이다. 중고교시절 교과서에 실린 시로 익숙한 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은 이렇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오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1934년 2월 『문학』 제2호에 발표된 시

이 시에는 너그럽게 자연을 즐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다. 작중 화자는 평화로운 전원적 삶에의 소망을 짧은 글로 유유자적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농촌여성들의 푸근하고 넉넉한 농심(農心)처럼 말이다.

장길산을 떠올리고 재인폭포 절경에 취하다 태풍전망대 앞에 서서 긴장감 도는 철책을 마주하다 김상용의 시로 푸근한 마음이 들 무렵, 마지막 코스로 간 곳은 전곡리 선사박물관이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연강 갤러리에 잠시 들러 전시된 작품을 보며 눈이 즐거워졌다. 선사시대로 과거 여행을 떠나는 곳이 바로 선사박물관이다. 구석기 유물을 중심으로 인류의 진화와 구석기시대 문화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주변은 억새밭과 벌개미취 등 계절의 꽃들이 한창 자태로 뽐내고 있다.  

볼거리가 많아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연천 여행. 국가 지질공원이 펼쳐진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 협곡 지역, 임진강 주상절리, 아우라지 베개용암, 전곡리 유적은 다음에 다시 한 번 꼭 와서 보리라! 다짐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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