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45)

▲ 유니클로의 무봉제 니트 원피스(사진/유니클로 홈페이지)

시골 옷가게를 물려받아
‘패션 민주주의’ 실현한
야나이 회장의 경영철학

최근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이 한 가닥의 실로 봉제선 없이 통으로 짠 니트 원피스(whole garment)제품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야나이 회장이 또 마술을 부린다며 패션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 옷은 꿰맬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기계로 찍어낸 듯 모양이 깔끔할 뿐만 아니라 남은 조각이나, 부자재 같은 쓰레기를 거의 만들어내지 않는 장점까지 가진다. 몸에서 분비되는 수증기를 열에너지로 바꿔 더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히트텍을 내놓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였다.

2013년 11월 22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유니클로 매장 앞에 히트텍 반값세일 쿠폰을 받으려는 인파가 북새통을 이뤘던 일이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출근 전 직장인을 비롯해 대학생, 주부, 젊은 커플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손님들은 100m가량 줄섰고, 개장 6시부터 7시까지 무려 1000여 명이 몰려 매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히트텍의 인기가 그랬다. 이 히트텍 제품은 등장해서 지금까지 10억장이 팔렸다했다.

이밖에도 그는 등산복으로 입던 ‘후리스(fleece)’를 겨울용 평상복으로 탈바꿈시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을 시켰고, 여름에는 땀과 열을 빠르게 없애주는 시원한 속옷(에어리즘)으로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야나이 다다시(柳井正)는 1949년 일본 야마구치 현 우베 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해에 자그마한 신사복매장을 열었다. 이 양복점이 유니클로의 시작이다. 야나이는 일본에서 경제인을 많이 배출한 명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고 시골 아버지의 가업을 이었다. 23살이었다. 아버지의 상점에 입사해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야나이 회장은 자신이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살려 경영상의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일해 온 직원들이 새파랗게 젊은 야나이 회장의 간섭을 거부하고 회사를 떠나버렸다. 직원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야나이 회장은 그들이 하던 일을 모두 떠맡아야 했다. 덕분에 그는 상품의 생산, 조달, 진열, 판매 그리고 재고관리에 이르기까지 의류 사업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할 것과 문제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불필요한 단계들을 줄여 품질이 우수하면서도 값싸며, 모든 연령층들이 입을 수 있는 옷, '패션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신념으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드디어 그의 사업은 전 세계 3160여 개의 매장에서 약 18조 원의 매출을 거둘 만큼 성장했다. 재산은 163억 달러에 달했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일본 최고 1~2위를 다투는 부자가 됐다.

그의 나이 이제 69세다. 70을 끝으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시골 옷가게를 가업으로 물려받아 50년 가까이 옷에만 매달린 야나이 회장은, 가족·국적·나이에 관계없이 유니클로 13만 사원이 ‘이 사람이라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한다. ‘패션 민주주의’의 철학을 후계구도에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그를 보며 갑질 논란으로 국민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는, 노력 없이 가업을 이은 이 나라 재벌의 후손들을 떠올린다.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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