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기도 양평

▲ 양수리 전경

문득 파란 하늘을 보면
괜히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만큼 팍팍한 현실에서
순수함은 점점 사라져 가고
순수함은 마음을 움직인다

수묵화처럼 고요한 두물머리
산과 물이 가까이 만나는 곳 양평(楊平)은 흐르는 강물 따라 드라이브하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곳이다. 수려한 경관 곳곳에 예쁘고 아담한 카페도 많아서 차 한 잔을 시켜놓고 강물을 바라보면 어느새 강물은 나의 정원처럼 가까이 느껴진다. 버드나무가 물가에 이파리를 툭! 떨구듯, 모든 것 내려놓고 그 품에 안겨 잠시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두물머리)는 수묵화 한 폭처럼 고요하고 편안함을 준다.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아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독일의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우리나라에서 올여름을 보냈다면  <가을날>이란 시는 아마도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라고 ‘위대한 여름’ 대신 노래했어야 했을 터. 불의 터널을 지나온 여름의 끝자락에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을 찾았다.
양평 국도에서 한참을 들어가니 소나기마을 문학촌 안내판이 보인다. 문학촌으로 가는 언덕길에는 분홍인가 하면 보랏빛인 방울방울 가득한 천일홍과 수탉 벼슬 같은 빨간 맨드라미가 장관을 이룬다.

소나기마을은 20세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황순원의 대표작인 <소나기>에 나오는 징검다리, 수숫단, 들꽃마을 등으로 재현한 문학테마공원이다. 소설 속의 분위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산책로 등을 잘 가꾸어 놓았다. 그의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에 ‘별’, ‘독 짓는 늙은이’, ‘목넘이 마을의 개’, ‘장편으로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이 있다.
 <소나기>의 맑고 순수한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소설 작품의 배경이 ‘양평’임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소설 끝부분에 나온다. 이 부분을 문학 테마마을로 재현해 지금의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이 만들어졌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는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 <소나기> 중 일부 -

청소년기에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소나기>의 내용 중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소년은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는 세수를 하다 말고 물속에서 조약돌 하나를 집어 소년에게 던지고는 갈밭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날 개울가로 가보았으나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날부터 소년은 애틋한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과 소녀는 가을꽃을 꺾으며 놀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물이 불어나자 소년은 소녀를 업고 도랑을 건넌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앓았을, 혹은 가슴속에 각인된 첫사랑의 비밀쯤은 하나쯤 있지 않을까.
소나기마을을 둘러보며 소설 <소나기>를 생각하다 문득 파란 하늘을 보면 괜히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만큼 팍팍한 현실에서 순수함은 점점 사라져 가고 순수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보다.

▲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 수숫단

수종사에 올라 삶을 바라보자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도착한 후 산행을 하기 좋은 용문산도 양평에 있고 양수리가 훤히 보이는 인근에 행정구역은 달라도 운길산도 있다. 이 가을엔 운길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에 올라 강물을 내려다보며 가을 햇살에 따끈한 차 한 잔을 해도 좋을 일이다. 가슴이 뻥! 하고 시원해질 것이다. 은행잎이 절정일 때는 용문산을 둘러보고 용문사에 있는 높이가 42m 가슴둘레가 14m나 되는 천연기념물 제30호의 은행나무를 마음속에 품어보는 것도 벅찬 일일 것이다. 110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니 그 앞에 서면 작아질 수밖에.

용문사 주변 길가에서는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서 각종 산나물을 판다. 산나물 향이 밴 비빔밥을 근처 식당에서 배불리 먹고 할머니들에게 말을 한두 마디 건네 보는 일. 나물 구경을 하다가 맘에 드는 나물을 골고루 사 오는 일도 나들이의 짭짤한 재미를 줄 것이다.
양평은 물이 맑고 깨끗해서 좋다. 이름 그대로 ‘물 맑은 양평 쌀’이 유명하고 서종 잣, 깨끗한 자연에서 나오는 친환경 로컬푸드로 이름난 각종 산나물, 버섯, 흑미, 발아현미, 도토리묵, 더덕 등 친환경 특구로도 정평이 나있다. 매달 3일과 8일에 열리는 5일장은 넓은 장터에 노점까지 포함해 600여 개 가게가 늘어서 활력 있고 시장의 정을 느끼게 해 주고 사람 사는 맛을 준다.
공광규 시인의 ‘수종사 뒤꼍에서’ 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매일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

‘서프리카(서울+아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힘들었던 여름을 견뎌내서 그런지 올 가을은 두 배로 감사하고 싶다. 시원한 가을바람과 파란 하늘의 유혹에서 견디기 힘들다면 양평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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