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57)

영국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 화가이자 작가이기도 했던 새비지 랜도어(Savage Landor, 1865~1924)가 극동지방 여행길에 두 번의 조선 방문 후 189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조선(Corea or Cho-Sen;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란 책을 펴냈다. 민영환 등 당시 조선 권력가들의 초상화 등 30여 점의 인물삽화를 그려 남기기도 했던 그는 이 책에서 조선인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흔히 조선을 모르는 사람들은 조선인을 중국인이나 혹은 다른 이웃인 일본인과 닮았다고 생각들 하는데… 사실 그들은 그 어느 편도 닮지 않았다. 조선인은 북방 몽골리언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그밖에도 중앙아시아, 남방계 혈통이 많이 혼혈돼 있다. 체형과 혼혈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조선 만큼 흥미를 끄는 나라도 없으리라 여겨진다. 마치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인종들이 이 조그만 조선이라는 나라에 정착한 것처럼 보여지니 말이다.”

고고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시각에서는 조선이 ‘단일민족’이라는 우리의 순혈주의 신화는 여지없이 해체되고 있다. 그는 조선인 대부분은 몽골인종에 속하지만, 소수의 상류층은 중앙아시아계 인도·유럽종족인 아리안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시절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학습해 왔던 순혈의 ‘단일민족’이 아니라 ‘혼혈민족’이란 얘기다.
사실 우리는 저 먼 초기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약 2500여 년 동안 총 90여 차례의 외침을 겪는 동안 중국계 유이민과 몽골 난민 등 수많은 이민족이 유입(흡수·동화·귀화)돼 혼혈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순혈·혼혈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게 성씨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씨는 모두 5582개인데, 그중 한자 없는 한글 성씨는 4075개로 대부분 필리핀계, 일본계, 중국계, 베트남계 등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들의 성씨다. 이 귀화성씨는 결혼이민에 따른 귀화외국인 급증과 다문화가정 확산에 따라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 23명 가운데 21명이 이민자가정 출신이고, 그중 15명은 아프리카계라서 ‘검은 프랑스’로 불렸던 사실은 외국인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가디언>지가 “러시아월드컵은 오랜만에 인종과 사는 곳에 상관 없이 모든 프랑스국민이 같은 곳을 보게 하는 경험을 안겨줬다”고 한 지적을 되새겨 봄 직도 하다. 순혈-혼혈의 가름이 아니라 더불어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 세계화 시대인 지금 우리도 새겨보아야 할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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