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김석봉 한국농어촌공사 나주지사장

▲ 김석봉 한국농어촌공사 나주지사장

장마가 시작되었다. 6월26일 중부지방을 시작으로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7월까지 장마가 이어진다는 예보다.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를 좋아할 사람이 있겠나 싶지만, 장마를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다. 농업용수를 확보해서 공급해야 하는 한국농어촌공사 얘기다. 공사는 전국에 3400여 개 농업용저수지에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기에 공급하는 것이 주업이다.

농업용 저수지중 국내 최대 저수량을 자랑하는 곳이 전남 나주에 있는 나주호다. 유효저수량이 1억톤을 넘어, 웬만한 저수지의 100배가 넘는 크기다(평균 80만톤 규모). 이 큰 호수가 지난해부터 물 사정이 좋지 않다. 올해 영농기를 앞두고 연초에는 저수율이 25%까지 떨어졌다. 원인은 나주호 상류에 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매년 나주평야 일원에 4700만톤을 공급해야 하는데, 나주호에 들어오는 물보다 나가는 물이 많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초부터는 부족한 물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 긴급 용수확보대책을 시행했다. 인근 하천에서 상류 나주호로 물을 양수하여 채운 것이다. 농업용수 급수체계는 상류 저수지에서 물을 내리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간선, 지선, 지거를 통해 논까지 물이 닿는 형태다. 상류와 하류간 자연낙차로 물을 보내는 동력을 삼는다. 따라서 물이 부족한 지역에 물을 보내려면 상류 저수지에 물을 먼저 채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하루 4천톤을 나주호로 양수했지만 제때 비가 내려주지 않으면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물꼬 밑에 잠자야 벼농사를 제대로 짓는다는 속담이 있다. 물을 확보하는 것은 벼농사 성패가 달린 일이다. 제때 물이 내려오지 않으면 농민들은 애가 탄다. 물을 대야 하는 공사도 애가 탄다. 저수지에 물이 차 있어야 안심이다. 충분한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이 원망스러울 밖에 없다.

기후변화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아열대 기후가 되면 강수량이 는다고 하지만 국지성 집중호우 형태다. 지역별 강우량 편차가 커서 전국 평균 강우량은 높은데 특정지역은 가뭄이 든다. 같은 양이라도 단시간 내린 폭우는 하천으로 흘러가 버린다. 꾸준히 내린 비라야 땅으로 스며들어 저수지로 모인다. 집중호우는 침수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급수뿐 아니라, 배수도 해야 하는 공사로서는 집중호우가 마냥 반갑지 않다. 특히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재배 논은 조금만 침수되도 피해가 크다. 배수장을 모두 가동해도 게릴라성 폭우는 늘 농가에 피해를 입히곤 한다.

비가 오는 건 그래서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가뭄에는 용수로로 물 보내는게 걱정이고, 집중호우에는 배수로로 물을 빼는게 또 걱정이다. 여담이지만 논까지 가는 물길이 용수로, 논에서 빠지는 물길이 배수로다. 생활용수로 말하면 상수도, 하수도 격이다. 도로의 어원에 도(道)는 수레 두 대, 로(路)는 수레 세 대가 지날 수 있는 길이라 한다. 농업용수가 국가 수자원 총 이용량의 61%를 차지하니 농업용수에는 길 路자를, 생활용수에는 길 道자를 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장마에는 침수피해 없이 풍족한 비가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공사도 하늘만 바라보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용수확보대책을 병행할 것이다. 나주호를 가득 채워 나주평야를 기름지게 하고 넉넉한 물인심도 보여줄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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