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카페인에 민감해져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
이 분위기에서 한 잔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부터 집 입구쪽으로 창고가 하나 지어져 있었다. 먼저 사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장을 담가 판매를 하시려고 식품제조 영업허가(사업자등록)를 내면서 메주를 만드는 방으로 지으신 것이었다. 우리가 이사 오면서 인수받았고 그동안 계속해서 메주 제조장으로 사용해 왔다.

처음에 창고 지붕에서 물이 새고 해서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지만 우리가 온 지도 13년, 지어진 지는 거의 20년이 가깝다보니 여기저기 쥐구멍이 생기고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들기도 해서 다시 수리를 해야 하나 철거를 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게다가 요즘 장이 나가지 않다보니 창고를 쓸 일이 별로 없어 집안에 쓸데없는 잡동사니만 쌓여있다. 혼자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창고 주변으로 130여 평이 잡종지여서 대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남편의 말에 얼핏 우리 집도 이번 기회를 새로운 터닝포인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몇 주 전에 소수마을에서 정원수와 화초, 야생화를 재배하는 정원이 아름다운 선배님 댁에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거처하는 집은 위에 따로 있고 정원에 아담한 통유리로 지은 카페 같은 식당이 있다.
밖으로는 백색 시멘트로 야트막하게 낮은 돌담으로 둘러쌓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문에 달린 풍경이 맑은 종소리로 사람을 부른다. 한쪽으로 음식을 할 수 있는 정갈한 주방-(묵직한 팬들이 걸려있고 투박한 밥사발과 구수한 찻잔이 놓인)-이 차지하고 있고 빈티지하면서 따뜻한 나무의자와 테이블, 그 사이를 흐르는 잔잔한 음악,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실시간 바깥풍경. 키 큰 나무와 우거진 숲, 들고나는 길섶으로 피어 있는 색색의 갖가지 꽃들, 마침 실내에 들여 놓은 화분을 가리키며 “이 애는 이번에 들여 온 서향동백인데 일본 목단과 느낌이 비슷해.” 사모님이 소개한다.

흔히 보는 붉은 동백과는 느낌이 달랐고 마치 우리의 함박꽃 같았는데 향기가 그윽한 게 단아했다. 언제부턴가 카페인에 민감해져서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안 와서 마시지 않는데 여기 이 분위기에서 한 잔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통유리 카페에 맘이 꽂혀 있었나 보다. 우리 집 창고를 헐고 그렇게 새로 지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우리 여기에 새로 지어보면 어때?” “옛날엔 사업을 할 수 있는 땅이었지만 지금은 보전지역으로 묶여서 안 될 거야” 남편의 한마디에 찬물을 끼얹은 듯 내 마음은 풀썩 가라앉았다.
나는 배봉지를 싸던 손을 탁탁 털고 집으로 올라왔다. 저녁은 뭘 먹어야 될지, 앞다리살 고추장에 버무린 것에 쌈이나 쌀까….

자투리 텃밭으로 도는데 웬 나비가 저렇게 모였나 해서 보니 미처 뽑지 못한 열무가 어느새 쑥 자라 무장다리꽃을 피웠다. 푸르기만 한 텃밭에 흰 꽃잎 끝에 보라색 물감을 들여 방실방실 환하게 웃고 있다. 텃밭이 온통 새로워졌다. 모습은 안 보여도 꿩이 울고 있다. ‘껑 꺼어엉’ 꿩 우는 소리에 꿈틀하고 내 하루가 다시 깨어난다. 상추 뜯어 들어가는 길에 꽃은 안 보여도 인동초(금은화) 진한 향기가 먼저 와 있다. 나도 모르게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 철이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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