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34)

▲ 사진출처=2018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김여정의 미니스커트는
남측 문화와의 조화로
가깝고 싶다는 표현일까…

‘판문점 선언’에서 우리는 장장 68년의 한이 풀리는 신호탄을 보는 듯 했다. 남북 정상이 만들어낸 비핵화 선언은 그야말로 평화의 폭탄처럼 세계를 강타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동족 간에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우리에게 2018년 4월27일은 그래서 참으로 코끝이 시려오는 감동의 하루였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정상 만남까지의 과정을 복기(復棋)해보면서 사람들은 가녀린 한 여성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이야기다. 김정은 위원장의 그림자처럼 함께하며, 북한 정권의 제2인자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그녀의 예의 바르고 온화한 미소와 수수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는 듯하다. 평창올림픽에 ‘외교’종목이 있었다면 단연 그녀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남측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부드러움’이나 ‘호감표시’도 김여정의 사전 ‘입력(入力)작업’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들을 할 정도였다.

그런 김여정이 판문점 회담 날 평창 때와 달리 무릎 위 10여㎝나 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났다. 북한에서는 통상 여성들이 스키니 진(꽉 끼는 청바지)이나 미니스커트를 입지 못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도 그랬다. 모두가 놀랐다.
미니스커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요란했다. 20대의 디자이너가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과 젊음의 함성을 가위 하나로 토해냈고, 이어 세계를 제패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24세)가 1958년, 패션쇼에서 선보인 미니스커트가 전 세계적으로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보수적인 영국에서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탐탁찮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미니스커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필경 메리 퀀트는 그 수출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 제국 4등급 훈장을 받았다.(그녀는 훗날 작위급인 대영 제국 2등급 훈장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가수 윤복희가 1967년 최초로 미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미니스커트를 입지도 않았고, 인적이 뜸한 새벽에 귀국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윤복희가 TV 화면을 통해 처음으로 미니스커트차림을 선보인 것은 확실하고,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급기야 군사정권이 미풍양속을 운운하면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은 30㎝ 자를 들고 여성들의 치마 길이 단속에 나섰다. 단속 기준은 무릎 위 20㎝ 이상이면 처벌이었다. 그러나 미니의 강풍이 이 땅을 휩쓰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도시·농촌·산촌·어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니가 완전히 장악했다. 어디 그뿐인가. 오늘날의 미니는 ‘하의 실종’이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킬 만큼 짧아졌다. 김여정의 미니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짧은 길이다.

그러함에도 김여정의 미니스커트는 왠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떤 신호일까. 남측 문화와의 조화를 통해 가까워지고 싶다는 표현이었을까. 북한도 개방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는 시위였을까. 어떤 의미였든 그 차림이 따스한 미소로 남는 것은 그녀가 보여준, 남북한을 이어준 ‘진실 외교’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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