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42)

“연락처가 다 날아갔어요. 전화번호 보내 주세여~”
이따금씩 받는 문자 메시지다. 전화기에 내장돼 있는 연락처들이 초기화나 기기 이상 등의 이유로 한 순간에 없어져 버렸으니 참 황당할 법도 하다.
‘이크, 이거 한가로이 남 얘기 할 때  아니지…’ 그런 일이 내 일이 될 듯 싶어 늘 불안불안해 하다가 최근 오래된 내 휴대폰을 서둘러 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그리고 연락처부터 새 스마트폰에다 옮겨 저장했다. 그런 다음 차근차근 하나하나 점검하듯이 전화번호를 지워나갔다. 지난 날 일 때문에 스치듯 한번 만나 주고 받았던 알듯 모를 듯한 이의 연락처가 삭제 1순위 였다. 아마도 그이도 나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렇게 560여 개 연락처가 350여 개로 줄었다. 불현듯 이것도 적지 않다고 생각됐다. 그리고 ‘이중에서 진정한 내 친구는, 절친은 몇명이나 될까…?’하는 생각에 미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선뜻 ‘누구 누구~’하고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게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문화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 교수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사교성을 연구하면서 ’신피질 크기가 그룹 규모에 미치는 제약조건(1992)’이라는 이색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정교한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영역인 신피질이 클수록 친구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진정한 사회적 관계라 할 수 있는 인맥(수)의 최대치는 150명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른바 ‘던바의 수’다.

로빈 던바 교수는, 호주·뉴기니·그린란드에 거주하는 원시부족의 최적정 평균 주민수는 150명이라고 결론지었다. 던바 교수는, 그 이상이 되면 2개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 더 나으며, 이를 토대로 소셜네트워크(sns) 친구가 1000명이 넘는 사용자라 해도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150명 정도, 이중에서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고작 20명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한가?>라는 저서를 통해 ‘던바의 수ㅡ3배수의 법칙’을 얘기했다. 즉, 자신에게 곤란한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진짜 절친은 5명, 그 다음 절친은 15명, 좋은 친구는 35명, 그냥 친구는 150명, 아는 사람은 500명, 알 것도 같은 사람은 1500명 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올해 99세인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함께 살며 의지하던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때가 찾아와 외로움이 컸는데, 친구가 큰 버팀목이 돼 줬다”고 하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이제라도 자신을, 자신의 주위를 다시 바로 돌아봐야 할 때다. 이 봄, 흐드러진 꽃 향기 속에서 한잔 술이라도 나눠가며 기댈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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