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남 하동

▲ 쌍계사 벚꽃길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
영호남 주민 화합의 상징 ‘화개장터’

문학은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가 바삐 살면서 놓치기 쉬운 소중한 정신적 가치들이 문학을 통해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잘 살아봐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문학의 배경이 됐던 장소를 돌아보며 그곳에서 나는 별미와 특산물을 접해보고 농촌의 향기를 재조명하며 삶의 역동력을 만나는 기회를 가져본다.

하동에 가면 마음의 봄도 핀다
봄은 꽃과 함께 온다. 하루라도 빨리 봄꽃을 만나고픈 상춘객들의 설렌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남쪽은 자석처럼 자꾸 끌어당긴다. 여기저기서 봄소식을 알려오지만 경남 하동에 가서 봄을 만나고 오면 제대로 만나고 온 것 같아서 좋다. 꿈속을 다녀온 듯 마음이 환해진다.

남쪽을 달리다 섬진강 물줄기를 만나면 머릿속이 언제 아팠냐는 듯 근심 걱정들이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리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시원해진다. 넓고 깊게 도도히 흐르는 푸른 강은 예나 지금이나 한 곳으로 흘러갈 뿐인데, 강물이 마치 나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처럼 흐르는 것만 같아 강물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물을 보노라면 어느새 위안이 된다. 섬진강은 잘 그린 한 폭의 그림 같다. 섬진강에 오면 섬진강의 대표 시인 김용택 시인이 먼저 떠오른다.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을 강물에 적셔보자

이 세상 /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중략) 새벽 강물에/눈곱을 닦으며 /우리 이렇게 그리운 눈동자로 살아 /이 땅에 빚진 /착한 목숨 하나로 /우리 서 있을 일이다.(김용택 시집「섬진강」 중에서 섬진강 5)

하동 땅을 밟으면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시가 생각나서일까? 지형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까. 시인의 시가 아니더라도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가난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봄날에 행복한 나그네가 된다.

봄이면 경남 하동은 매화를 시작으로 꽃대궐이 되고 벚꽃이 개화를 시작하면 벚꽃길은 가히 환상적이다. 하동이 자랑하는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사이 화개천을 따라 약 5㎞에 이르는 벚꽃터널구간이다.

오래된 아름드리 벚나무가 팝콘처럼 일제히 꽃을 피우면 고목나무에 꽃이 핀 것처럼 생명력이 넘친다. 잠시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이 길을 걸으면 좋으리. 내 삶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뜻하는 말)’ 속으로 걸어가도 좋으리...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최참판댁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가면 박경리의 대하소설인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이 고향집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곳은 소설에 나오는 고향의 주 무대이며 해마다 10월이면 평사리 토지문학제가 열리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드라마로도 상영됐던 토지의 등장인물인 최치수, 별당아씨, 서희, 길상 등이 떠올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 토지문학비

걷다가 ‘박경리 토지 문학비’를 만나면 박경리 선생의 살아생전 운명과 맞서 싸웠던 강인한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땅은 민족이 살아온 지역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조상부터 내게 이르기까지 태(胎)를 묻어온 고향이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를 먹여 살려온 생명의 젖줄이다.

최참판댁을 둘러보다 만난 돌담장 옆에 핀 연분홍 매화가 수줍게 웃으며 오래된 우물에서 옛 기억을 퍼 올린다. 동네 구석구석에 더불어 사는 최참판과 관련된 하인들이나 소작농들의 이야기가 소곤소곤 봄바람을 타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화개장터엔 없는 거 빼고 다 있어요~
섬진강 물줄기로 마음의 갈증을 적시고 평사리 들판을 거닐며 대지의 기운을 마시고 종횡무진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출출해진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조영남의 구수한 노래가 이끄는 곳, 그쯤 해서 찾게 되는 시장이 화개장터다.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쳐지는 강변에 자리한 화개장터는 한국의 유명한 전통시장이다. 화개장터의 주막에서 재첩국이나 참게탕에 막걸리 한 잔 하면 봄날의 최고 사치라 여겨도 좋으리. 허기도 가시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장터를 둘러보면 산나물, 녹차, 재첩국, 산수유 열매 등 이 지역 특산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014년 화재 후 복원된 화개장터는 화려한 부활로 영호남 주민의 소득 증가와 화합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하동의 대표 특산물인 하동녹차는 무농약 지구로 선포된 야생 재배지에서 자라서인지 한입 맛본 순간 향기에 그만 사로잡히고 만다.

화개동 용강마을에 있는 ‘찻잎 마술’에 가면 녹차를 식재료로 한 ‘알프스 녹차 밥상’을 개발해 선보인다니 발길 따라 찾아가 볼일이다. 녹차를 활용해 만든 고운비빔밥 외에 차류, 차꽃을 숙성한 와인, 차씨를 추출한 오일, 3년을 녹차꽃으로 천연발효시켜 만든 차꽃 식초 등이 있다.

봄이 오는 첫 동네 하동에 가면 달뜬 상춘객들과 화개장터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만나 북적이는 삶의 소리가 드높다. 하루만 즐기기엔 부족할 넉넉하게 1박의 여정으로 하동 땅을 둘러보면 좋으리. 걷다보면 어느새 맑고 초롱해진 눈망울이 삶의 의욕으로 반짝이는 곳. 섬진강은 지금 이 순간을 씩씩하게 잘 살라고 응원가처럼 축복처럼 찾는 이들을 반겨주고 모든 걸 품어 안고 꿈틀꿈틀 흐른다.

▲ 류미월 객원기자 rhyu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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