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승하 교수

시(詩)는 사람의 내면 깊이 자리한 감정과 정서를 단문으로 압축한 아름다운 글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좋은 시 몇 구절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애쓴다. 그리고 울적하고 우울한 때는 좋은 시를 읊으며 마음을 달래고 위로를 받는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승하 교수를 만나 시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은 시는 읽을수록
맛·향기가 있고 감동 주기도…

수감자들 시쓰기 배운 뒤
반성·참회로 재범률 감소

시는 인간 내면의 감정·정서를 짧게 압축한 문학장르
“시는 일상의 대화에서 쓰이지 않는 고차적이고 상징적이며, 은유적인 표현으로 인간 내면의 감정과 정서를 짧은 글로 압축한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최근에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시로 인해 독자들이 시를 멀리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유치환 시인의 작품인 ‘깃발’이란 시에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구절이 있는데 엉뚱한 말이지만 이 구절로 인해 이 시가 지닌 정서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가 있죠. 이렇듯 시란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시인과 독자 간의 감정의 교류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이승하 교수는 시의 종류로 감정을 서술하는 서정시 와 전쟁과 영웅의 일대기를 주제로 하는 서사시, 이외에 연극에서 극과 시의 요소를 혼연일체 표현해내는 극시(劇詩)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 서사시와 극시는 쇠퇴해 거의 쓰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미술에서 추상화가 있듯이 ‘실험시’라는 이름으로 시인이 독자(獨自)의 내면에 깊이 간직한 초현실적인 의식 흐름을 표출해내는 시가 있다고 한다.
천재 시인으로 일컫는 이상(李箱)의 연작시(連作詩)인 ‘오감도 제1호’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표현한 시다. 따라서 이 시는 연구자들에게 내면의 의식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알아내는 희열감을 얻고자 논문으로 많이 쓰이지만 독자에게는 잘 읽히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에 1985년 ‘안개’란 작품으로 등단해 20세 후반에 세상을 떠났던 기형도 시인은 그 시대의 아픔을 다룬 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젊은이의 방황과 내면의 고뇌를 잘 표현해 팬들의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1984년 뭉크의 ‘절규’ 작품을 시로 표현해 등단
이승하 교수는 1984년 중앙일보에 게재된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작품인 ‘절규’를 보고 느낀 점을 ‘화가 뭉크와 함께’란 작품으로 탄생시켰고 이는 이 교수의 시인 등단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한 그림의 번역을 넘어 온전한 소리가 되지 못하는 눌변과 더듬거림 화법으로 두려움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해 작품이다. 이후 이 교수는 시집 12권과 시선집 2권을 펴냈다.
“추상시로 등단을 했으나 요즘은 서정시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서정시는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물이 나게 하는 감성을 지니고 있죠.”

그는 윤동주, 김영랑, 김소월, 정지용, 한용운 시인은 지금의 남북 7천 만 국민 뿐만이 아니라 먼 훗날 우리 후손들도 즐겨 애송할 좋은 서정시를 썼다면서 이들의 시에는 사투리와 정서적인 시어(詩語)를 많이 사용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시는 결국 독자와의 감정교류와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참 좋은 시는 읽을수록 음미하는 맛이 나고 은은한 향기를 품어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직생활 틈내 교도소 수감자 대상 시 창작 지도
한편 이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짬을 내 재능기부 차원으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찾아 수감자를 대상으로 시 창작 지도를 하고 있다. 수감자들이 시 쓰기를 배운 뒤 마음의 순화와 반성, 참회를 하는 것을 보며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감자들에게 어머니나 아내, 자녀를 주제로 한 시를 쓰게 한 뒤 낭송발표를 시키면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시를 읽질 못하고 웁니다. 이것만 봐도 시는 감정표현과 자기성찰 나아가 나 자신을 다시 살필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봅니다.
시 쓰기가 가족과 이웃, 동료 간의 유대의식을 되찾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지도를 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이 관계 속에 동물’인데 그것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시가 실어준다는 점을 발견하며 기쁨을 느낀다고도 했다.
무학으로 한글만을 쓸 줄 아는 사람도 시 쓰기 교육을 수강해 감동적인 시와 글을 쓰는 것을 많이 본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들 수감자 대상 시 창작지도로 시가 범죄인의 재범, 3범을 막는 사회적 기능마저 갖고 있음을 발견하고 많은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주제로 한
‘비망록’으로 소설가로 등단

한편 이 교수는 1989년 경향신문을 통해 ‘비망록’이란 이름의 작품으로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이 소설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주제로 쓴 작품이다.
“어릴 적 5년 연상이던 형은 대구의 명문고인 경북고에 진학해 글쓰기 재주가 출중해 교내에서 문사(文士)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의 강권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2학년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해 법관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대 3학년에 진급하자마자 아버지의 열망을 거역하고 졸업 후 서울대 국문학과로 편입했죠. 이후 아버지는 큰 아들의 반란에 실망과 좌절에 사로잡혀 자학의 나날을 보냈어요.”

이 교수가 고교에 진학하자 아버지는 이 교수의 교육진로에 대한 간섭이 심했다고 한다. 이 일로 그는 아버지의 간섭과 통제에 저항하고자 가출하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딴 뒤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을 휴학해 방황하다 형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공부에 매진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됐다. 형은 현재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아버지의 이해와 용서를 주제로 한 ‘길 위에서의 죽음’이란 소설집도 출간했다. 그는 남은 여생을 문학창작 정진과 수감된 재소자들의 교화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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