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 서인석 이사장

부친이 18살의 어린 나를 
미국 유학 보내며 
젖먹이 입양아 딸려보낸 
조국 사랑 깊은 뜻 받들어 
문화예술센터 문 열어 

미국 출장 인터뷰 취재 네 번째 인사로 워싱턴주 타코마시에서 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를 설립해 운영 중인 서인석 이사장을 만났다. 
서 이사장은 워싱턴주 거주 아시아 태평양지역 47개국 교민을 대상으로 정체성 정립과 조국애를 고취시켜주는 문화교육의 전당인 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APCC)를 운영 중이다. 서 이사장으로부터 문화센터의 운영 실태와 운영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47개국 공예품․의상․미술품 전시
교육․축제 개최해 교민 화합 이끌어

인터뷰를 하기 전 센터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47개국의 각기 특이한 미술품을 비롯해 공예, 조각, 의상 등 여러 장식품이 다채롭게 전시돼 있었다. 많은 전시품을 모으느라 서 이사장의 노고가 컷을 것이라고 짐작됐다. 벽면에는 홍콩의 유명 미술작가의 작품이 소담스레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센터 내 여러 교실은 특색 있게 꾸며져 있다. 무대가 있는 교실에선 우람찬 체구의 사모아인들이 신체 주요  부분만을 가린 채 그들만의 특이 의상을 입고 전통악기로 춤 연습에 한창이었다. 인터뷰 다음 날 한국의 추석명절을 주제로 한 축제가 있는 분주한 날임에도 인터뷰를 수락해 준 서 이사장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인터뷰에 돌입했다.

여성의 힘으로 47개국 교민을 대상으로 비영리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낯선 이국땅에서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전시·교육시설 확보, 교육 프로그램 개발, 운영자금 조달, 운영인력 관리 등의 만만치 않은 일 등등 어떤 동기와 의지로 이 일에 뛰어들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조부·부친의 조국애 받들고자 문화센터 개관
“이 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저의 조부와 부친께서 보여주신‘한국사랑’이라는 거룩한 뜻에서 시작된 것이라 봐야지요. 조부(서병규씨)는 1881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에 와 대학 유학을 한 선각자였습니다. 버지니아주에 있는 로아노크(Roanoke College) 대학을 졸업하셨죠. 졸업식 하객으로 조선 말기 의친왕이 다녀가셨다는군요. 

조부는 귀국해 고종황제 밑에서 일을 하셨어요. 일본 식민지 시대엔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의 항만 관계 일을 하셨답니다.

부친(서정익씨)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홍콩 소재 영국계 고등학교와 영국계 대학교를 졸업하셨어요. 1952년 미국 정부가 설립한 한미재단 단장으로 취임해 일을 하셨습니다. 
부친은 한국을 위해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귀국해 대한항공(KAL) 창립 멤버로 활동하셨습니다. 두 어른은 늘 앞서가는 생각으로 조국을 사랑했던 분이셨지요.”

서 이사장은 이런 두 분의 한국 사랑과 앞선 생각을 자연스레 본받아 어린 18살 나이에 미국 유학을 왔다. 부친은 학자금도 쥐어주지 않고 미국에 입양할 젖먹이 두 아이를 떠맡겼다. 
비행기를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쌍한 두 아이를 딸려 보내는 부친의 나라사랑의 깊은 뜻이 우선이었다. 당시를 회고하며 서 이사장은 눈물을 보였다.

서 이사장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루돌프 쉐퍼 디자인 학교(rudolph schaeffer school of design)에서 실내장식을 전공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데다 색채감각이 있어 학점이 좋아 장학금을 타며 공부했다고 한다. 
서 이사장은 1965년 미국 군의관과 결혼해 신혼 초기부터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일본, 한국, 태국, 홍콩을 전전하며 살았다. 1985년에 미국으로 귀환해 서 이사장의 그림 소질을 높이 샀던 대학에서 수채화를 가르치며 3년을 지냈다. 

문화센터 개관 후 임대료 조달 힘들어 숱한 폐관 위기
서 이사장은 1996년 부친을 여의었다. 그 슬픔에 서 이사장은 부친이 왜 자신을 딸로 두었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곤 부친과 같은 보람이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유산으로 받은 3만 불로 1996년 아시아태평양문화센터를 설립했다.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은 비영리재단이었다. 세금감면 혜택을 제외하면 별다른 지원이 없고 이익 창출이 안 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기부문화만을 믿고 일을 시작한 것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보람 있는 일을 통해 국위선양해 이름을 남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다. 

“늙어서는 못한다는 생각에 겁 없이 문화센터를 설립했어요. 설립 초기엔 건물을 빌렸는데 매월 임대료 내기도 벅차서 많은 고초를 겪었죠. 임대료 부담이 힘겨워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이사들의 강력한 만류로 오늘에 이르게 된 거죠.”

서 이사장은 타코마 시내에 있던 박물관이 신축건물로 이전하게 되자 기존 건물을 사려고 은행에 130만 불의 대출 로비를 했지만 불발돼 마음의 상처가 컸었다며 다시 눈물을 훔쳤다. 이런 고초 끝에 현재는 군(郡) 소유의 건물을 무료로 임대받아 전기료와 상하수도 비용만 내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땅 15에이커 무상 기증받아 2021년 신축 예정
서 이사장은 최근엔 지역 유지로부터 해변의 전망이 좋은 땅 15에이커를 무상으로 기증받아 문화센터를 신축할 수 있게 됐다며 기쁨에 들떠있다. 2500만 불을 투자해 2018년에는 기초공사를 시작하고 2021년에 새 건물을 개관할 목표라고.

새로 개관할 문화센터에는 아시아태평양지역 47개국별 식품매장을 둘 예정이다. 또 8개의 레스토랑과 푸드코너, 저소득 노인세대 주거시설, 문화교실이 들어선다. 그 외에도 페스티벌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열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앞으로 개관할 문화센터의 사명은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예술, 문화, 교육 비즈니스를 아우르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주민이 서로 넓고 깊은 이해와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매년 설이 되면 각 국가별로 돌아가면서 문화축제를 갖는데, 내년에는 한국이 주최국이라고 한다. 서 이사장은 한국 교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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