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문씨네 더덕농장 문홍석 사장

제초 중심 하루 3시간 일해
80대 노령에도 적합한 농사

전자상거래 주문 넘쳐 행복한 고민

미국 출장 세 번째 인터뷰 인사로 더덕 농사를 짓고 있는 문홍석씨를 만나
미국에서의 더덕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홍석씨는 세계 최대 강국이자 거대 부국인 미국에서 사업이 아닌 농사를 선택해
영농의 소박한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다.
넓은 국토와 첨단 농기계를 활용하는 농사를 하기보다
미국 교민 250여만 명을 대상으로 고향의 맛을 전할 더덕 재배에 성공해 
80대 초반에 노후를 즐기며 생활하고 있는 문씨의 더덕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축산연수 왔다가 미국 정착 
문홍석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시애틀 공항에서 차로 7시간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다.
문씨의 더덕 농장은 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인 워싱턴주 오로빌(Oroville)이라는 곳으로 2000명의 주민이 사는 오지 한촌(閑村)이다. 이 곳에 가는 도중 문 호수(Moon Lake)와, 발을 담그면 비누를 문지른 듯 미끈미끈한 물을 가진 비누 호수(Soap Lake)를 볼 수 있다. 그리고 1934년 댐건설에 착공해1942년 준공한 그랜드 쿨리 댐(Coulee dam) 등을 볼 수 있는 관광 코스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를 지나면, 비가 적어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건조지대를 만나게 된다. 이곳 건조지대 야트막한 위냇치(Wenatchee)지역 인근 산지에 물을 끌어 올려 풍부한 일조량으로 당도가 높은 사과를 재배하는 사과 생산 대단지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재배된 사과 수확은 멕시칸이 와서 한다. 수확된 사과는 대형 회사가 일괄 수매해 첨단 선별기로 사과의 상처, 색택, 모양, 크기 등에 따라 정선을 한다. 이후 세척해 대형 나무 상자에 넣어 선적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때 전 과정은 기계로 작업한다.

한국의 사과 재배 농민들이 이 지역의 사과재배와 선적(船積)까지의 기계화 과정을 견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문홍석씨의 미국 정착 영농 성공담은 파란만장했다. 

문 씨는 1937년 전북 익산 출신이다. 1970년 문 씨가 33세 일때 비락 우유의 사원으로 몬태나 주 리빙스턴 소목장으로 회사 연수를 왔다가 귀국을 포기하고 미국에 정착했다.

수예품 판매·가발가게·식당 등 사업 실패… 귀농 결심
목장 연수를 포기하고 시카고로 가 모텔을 하던 형과 가까이 살며 한국 수예품 판매와 가발가게, 식당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문홍석씨는 여러 사업을 했지만 하는 것마다 실패했다. 이에 미국의 넓은 땅에서 남과의 번거로운 접촉을 피할 수 있는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미국에 거주하는 250여 만 교민을 대상으로 교민들이 좋아할 고향의 맛을 지닌 한국 작물 재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영농 의욕을 품었다.
시카고에서 함께 살자는 형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다 지금의 농장 터인 오로빌 한촌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한국 배 묘목 생산하다 시작한 더덕농사가 전업농사 돼
영농 정착 초반에는 미국에 한국산 배만큼 맛있는 배가 없다는 것을 착안해 한국 배 묘목을 들여왔다. 워싱턴 과수전시회에 부스를 설치해 한국 배를 선전해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종묘업자에게 속아 과수 묘목장사를 접었다.

이후 1만2000평 땅에 한국 배를 심어 재배했다. 배 재배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국 비디오를 보다 순천의 더덕농사 광경을 보게 됐다. 지주(支柱)를 심고 가꾸는 모습에 관심과 흥미를 느껴 90년대 초반 배 과수원 한켠에 더덕을 심었다.

더덕농사는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배 재배보다 소득도 많았다. 나이가 많아 배 농사에 힘이 부쳐 배나무를 뽑아 폐원하고 더덕농사를 전업(專業)으로 짓기 시작했다.

살아 생전 형이 늘 전화를 걸어와 농사를 짓지 말고 시카고에서 함께 살자고 했지만 문홍석씨는 더덕농사를 계속 했다. 문 씨는 미국에서의 한국 교민이 즐겨 먹을 작물을 재배하고 공급하는 것에 큰 자부를 느꼈다. 또한 농사를 지으며 심신 안정과 자연을 벗하는 즐거움을 찾았다. 다행히 더덕 판매가 순조로워 영농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80을 넘은 노령에 힘이 적게 드는 더덕 농사가 제격이라 천직(天職)이 됐다고 했다. 
더덕은 파종 후 3년을 키워야 한다. 3년작을 해야 돼 매년 4000평 단위로 가을 파종을 한다. 봄에 씨를 파종해야 하나 새가 씨를 파먹는 탓에 가을 낙곡(落穀)으로 새 피해가 줄어드는 가을에 파종을 한다.

문씨 집 옆에는 잉어가 사는 냇가가 있다. 가뭄 때는 이 냇가를 이용해 점적관수와 스프링클러로 물을 줄 수 있어 물 걱정은 없다고 한다. 

더덕은 약성과 향기를 지녀야 하므로 생선기름을 중심으로 한 유기질 비료를 준다. 또 제초하는 수고를 덜기위해 비닐멀칭을 하지만 비닐 사이로 나오는 풀이 있어 풀을 뽑으려 아침 6~9시 사이 3시간은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이웃 주민을 만나 담소하며 재미있게 생활한다.

더덕 2천 톤 생산 6천만 원 수입
꿀 위탁 판매로 2천만 원 소득

문홍석씨는 연간 2천 톤의 더덕을 생산한다. 수확한 더덕은 냉동 또는 건조할 사이 없이 생으로 판매하는데 시애틀에 있는 한인 운영 대형 마트에 납품하고, 일부는 문씨가 온라인상 전자거래로 판매한다고 한다. 
한때 한국일보에 더덕광고를 했더니 주문이 쇄도해 신문 광고를 중단하고 지금은 오직 온라인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소 주문 5파운드(2500g단위) 60불로 우리 돈으로 약 7만 원 내외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는 더덕농사로 연간 5000만~600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 

문홍석씨는 인근에서 연 50드럼의 꿀을 생산하는 양봉농가로부터 생산한 꿀 전량을 판매 위임받아 더덕과 같이 판매하는데 꿀 판매액만도 1500만~2000만 원을 번다고 말했다.

한편, 문씨는 밭 주변에 호두나무 150그루를 키우고 있다. 이 호두는 보통 한 가지에 1~3개가 열매를 맺는데, 문 씨가 탐구력을 발휘해 키운 나무에서는 4~7개가 달리고 맛도 좋을 뿐 아니라 추위에도 강해 재배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포부를 밝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