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와 고추장의 원료는 바로‘고추’다. 가을볕에 고추 말리느라 분주했던 농촌에는 멍석도 모자라 양철지붕 위에까지 빨갛게 물들면 농촌의 가을풍경은 절정에 이른다. 고추 건조기가 생기면서 이제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서나 볼 수 있다. 

고추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하나의 생활문화로 정착됐고 신성시해 왔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빨간 고추와 숯을 매단 금줄을 치고 악귀와 부정의 접근을 막았다. 심지어 장이나 술을 담글 때도 금줄에 고추를 달았다. 

고추밭에는 사내 오줌을 줘야 고추가 잘 달린다고 믿었다. 아녀자가 고추고랑을 훌렁 타고 넘기라도 하면 호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선조들은 고추에게도 감성을 부여하고 세심한 농심을 전달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중에 하나다. 국민 1인당 하루 5.1g, 연간 2~4kg을 소비한다고 한다. 고추는 풋고추, 홍고추, 피망, 파프리카 등 종류도 다양하다. 또한 채소 중 농가소득 1위의 효자품목으로 연간 생산액이 1조2천억 원이 넘는다. 또한 음식에 맛과 향을 더하고 미각을 돋우는 기능 외에도 매운맛을 내는 캅사이신(capsaicin)과 비타민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한국인의 DNA 속에는 매운 고추 같은 강한 집념과 열정이 흐르고 있다. 여성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견디면서 오늘의 가정을 일궈낸 것도 매운 고추의 힘일 것이다. 올해는 잦은 비와 고온으로 흉년이라고 한다.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 흘려 거둔 소중한 고추가 제값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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