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18)

지난 12일 개막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의 주인공은, 전례없이 등장한 대통령도 아니요 팔순의 윈로배우 신성일 이었다. 지난 6월 폐암 3기 소식이 전해졌던 터라 그의 건재가 더욱 세상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청바지에 진한 아이보리색 점퍼차림의 백발의 노배우는 전에 없이 활기에 차 있었다. 1937년생 이니까 우리나이로 치면 올해 여든 한살 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회고전’ 행사로 그의 대표 출연작인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안개>(감독 김수용)·<길소뜸>(감독 임권택)·<별들의 고향>(감독 이장호) 등  8편이 상영돼 관람하고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때는 영화배우를 ‘딴따라’라고 천시했지만,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유일한 오락이자 종합예술인 영화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신성일은 대구 출생으로 1960년 김승호 주연의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이후 지금까지 약 510편의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을 맡았고, 이른바 ‘청춘스타’로서 탄탄하게 이미지를 굳히던 전성기 시절에는 한 해에 65편이나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이는 광복 이후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특히 단 18일 만에 만들었음에도 그의 성가를 높인 대표작 <맨발의 청춘>은 1964년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청춘스타 신성일’의 이미지를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킨 영화였다.

그렇게 한국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굵직한 한 획을 그어온 당대 최고의 스타지만, 그는 혼자 산다. 부인인 영화배우 엄앵란과는 ‘각자의 존재감을 인정하는’ 영원한 부부지만 각각 따로 산다. 그는 호탕하게 말한다. “나는 혼자서 잘 해먹고 잘 지내요. 마누라 꽁무니 따라다니며 얻어먹는 사내놈치고 건강한 놈이 없어… 나는 57세 때부터 지금까지 25년간 독립해 살았어요.”

그의 여성관 또한 남다르다. “지금까지 애인이 없었던 적은 한번도 없어요. 애인은 내게 삶의 활력을 줬어요. 여성이 없으면 남자 인생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소.” 그러면서 여지껏 살아온 인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했다. “나는 평생 하고 싶어 하는 걸 했어요. 내 주체성을 갖고… 삶에서 후회란 자기 뜻과 다르게 끌려갔을 때 하는 것입니다. 나는 후회 할 일이 없어요. 내가 부족하게 살아온 게 무엇이 있나요?”

그는 내년에 <행복>이란 영화를 찍고, 내후년에는 김홍신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제작해 나이 많은 신성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노익장 이다. 누가 그랬던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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