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100대 국정과제 속 ‘여성농업인 권익향상’ 내용은?

  생활개선회  “정책 대상 설정 자체가 잘못돼 있어”
  여성농업인회  “공동경영주 등록 남편동의 삭제해야”
  여성농민회  “여성농업인 전담부서 조속히 설치해야”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은 ‘어머니’ 정책
지난 19일 모 방송에서 저녁시간 ‘어머니의 밥상’이란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일이 있다. 경북 영덕에 계신 80세 어머니가 서울로 시집간 43세 막내딸에게 어려서 즐겨먹던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80대 어머니가 평생 농사만 짓고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일만 하다가 농부병으로 무릎관절이 상하고, 이곳저곳 몸이 아프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방송 내내 계속됐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애써 외면해 왔던 여성농업인의 권리와 지위문제가 방송화면에 있는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80대 어머니가 제작진에게 말했다. “이게 아마도 엄마가 전하는 마지막 밥상이 될 것 같아.” 평생 농사일만 하면서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의 되뇌임이 안타깝게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농부병으로 고생하는 농촌의 수많은 여성농업인들을 위해 무릎연골 수술을 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65세를 넘어 80대 노인들도 정년퇴직 없이 농사를 짓고 있지만 모두 무릎관절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은 난해한 백과사전에 들어있는 내용이 아니다. 농촌 삶의 여건을 개선하고, 그동안 가족을 위해 평생 살아오며 일한 만큼에 대한 희생을 보상하고 권한을 보장해 주는데서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100대 국정과제를 들여다보니…
100대 국정과제 속 81-2항에는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에서는 총 7개 항목이었지만, 국정과제 속에는 5개 항으로 축소됐다. 

정확한 명칭은 ‘여성농업인 권리제고와 복리증진으로 양성평등 농촌구현’이라는 다소 긴 제목이다. 5개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여성농업인 공동경영주제도 강화’ ▲농촌보육서비스 강화를 위해 ‘국공립 보육·보건 공공서비스 강화 ▲여성농업인 특화 건강검진 실시 ▲직업역량 강화 및 복지지원을 위해 ‘여성농업인 대상 기자재 개발 및 보급’, ‘직거래사업 여성농업인 참여 확대’, ‘민간 여성농업인 지원조직 육성’, ‘여성농업인 도우미 지원 확대’ ▲이주여성농업인 후견인제 운영 및 정착지원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고 연도별 세부 이행계획까지 포함돼 있다.

대통령 공약사항에서 빠진 두 가지 내용은 ‘주민 공동시설(마을회관 등)을 이용한 공동 급식센터 설치 확대’, ‘여성농업인 소규모 생산물 유통 등 지원제도 마련’ 등의 항목이다.

여성농업인들 “현실 외면한 정책”
100대 국정과제에 담긴 ‘여성농업인 권리향상’에 대해 생활개선회·여성농업인회·여성농민회 등 여성농업인단체의 반응은 한결같이 차갑기만 하다. 이들 단체는 이구동성으로 “농촌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특히, 김인련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장은 “전체 농업인의 53%를 차지하는 농촌여성에게 언제 한번 제대로 설문조사나 정상적인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느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김 회장은 이어 “농촌여성의 평균연령이 65세를 넘어서 있는데, 연령대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탁상에서 정책을 마련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한여농 이명자 회장도 “시골 노인들은 농부병으로 연골이 모두 달아 걷기조차 불편해한다. ‘연골수술 지원’ 등이 복지정책에 담기는 일이 현실적인데 건강검진만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연령대 설정이 잘못돼 있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동조했다.

아울러, “‘이주여성 후견인제’에 대해서도 이주여성의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는 어찌 쏙 빼놓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전여농 정영이 사무총장도 “여성농업인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전여농에서는 앞으로 ‘농민헌법전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헌법에 여성농업인의 직업적 권리보장과 권리증진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농업인 전담부서 11월 국회통과 예정

농식품부, 매월 간담회 통해 현장의견 수렴
여성 희생에 대한 온전한 보상에서 출발해야

지자체는 ‘팀제’ 형식

이 같은 여성농업인단체의 반응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농촌복지여성과 김상열 사무관은 “어떠한 여성농업인정책을 내놓아도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도 매월 셋째 주 목요일 개최되는 여성농업인 정책 실무자와의 주제가 있는 정책 간담회를 통해 정책과 현장의 인식 차이를 좁힐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 이번 간담회는 ‘여성농업인 공동경영주 등록’ 등 세 가지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농업인 전담부서 문제는 오는 11월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가시화 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각 도를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단체의 전담부서는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팀제 형식의 운영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정부정책 담당자들도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을 위한 정책적 입안이 힘겹다고 말한다. 그건 아마도 ‘양성평등’이라는 패러다임에 매몰돼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앞서 모 방송의 프로그램 ‘어머니의 밥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남성으로부터 여성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문제가 아니다. 양성평등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공동경영주’와 농협 임원비율 등의 정책 이외에 전체 여성농업인 정책에서 양성평등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당연시 되어온 여성농업인의 희생에 대한 온전한 보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시적 관점의 정부정책과 농촌 현장의 밭고랑에서 바라보는 수용자의 관점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가 네 차례에 걸친 ‘여성농업인 육성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대한 평가는 늘 ‘탁상공론’이니, ‘법이 늘 고만고만하다’며 외면 받아 왔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헌법에 ‘직업적 권리증진’ 담아야
한여름 뙤약볕이 한창일 때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나눠 밭에서 풀을 뽑고 밭이랑에 한 뼘 공간이라도 놀릴까봐서 이것저것 씨앗을 뿌려 푸성귀를 거두는 이는 다름 아닌 우리 어머니들 모습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일만 하고,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고 늘 한걸음 물러서 가족들 뒤편에서 얼굴에 미소만 짓고 살아 왔다. 그 희생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여성농업인 권익향상’은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겨져 왔던 이 땅, 농촌에 사는 어머니들의 희생에 대해 묵묵히 일터에서 일만 해왔던 그 노력만큼의 권리와 지위보장을 국가가 해 줘야 한다는 내용이 진지하게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가 네 차례에 걸쳐 개정해 온 ‘여성농업인 육성계획’에 앞서 여성농업인단체장들이 지적한 ‘연령대’와 ‘농촌현실 반영’이 제대로 담겼는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매월 한 차례 진행하는 여성농업인단체 실무자 간담회가 실무자 차원에만 머무르지 말고, 농촌현장에 대한 구체적 설문조사 등 농촌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추가적 노력이 병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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