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6)

오랜 가뭄으로 가슴을 태우더니, 뒤따라 온 장마가 끈적거리는 더위로 우리를 괴롭힌다. 촉감이 고슬고슬하고 시원한 옷차림이 필요한 계절이다. 그래서 일게다. 이맘때면 ‘쿨비즈’란 말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쿨비즈(cool-biz)’는 사전에도 없는, 일본에서만 쓰는 일본식 영어다. 2005년부터 일본이 여름철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근무할 것을 권장하면서 ‘쿨비즈니스’ 또는 ‘쿨비즈’란 말을 붙였다.

2012년 6월1일, 서울시가 공무원들에게 반바지와 샌들 착용을 허용하면서 우리도 이 용어에 익숙해졌다. 요컨대 너무 격식을 차리지 말고 시원한 차림으로 무더위를 이겨보자는 이야기다. 얼핏 보기에 일본이 이런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 같지만,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 이미 비슷한 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시어서커 데이’(Seersucker day)가 바로 그것이다.

시어서커는 올록볼록한 주름이 있는 가벼운 면직물이다. 세탁이 편리한데다 다리미질이 필요 없다. 잔잔한 주름 때문에 피부에 달라붙지 않고 통풍과 열 발산이 탁월해 여름용으로 훌륭한 원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지미’라 하여 여름철 침구, 잠옷, 내의 등으로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 시어서커는 20세기 초부터 더운 미국 남부지방에서 많이 입었고, 에어컨 없이 실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입었다.

그러다 1920년 미국의 아이비리그 학생들과 할리우드 배우들이 시어서커 슈트를 입으면서 그 지위가 ‘격상’됐다. ‘시어서커 데이’는 1996년부터 미국 국회에서 시작됐다. 의원들이 무채색 양복만 입어, 경직된 이미지를 밝고 경쾌하게 하고, 에너지를 절감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런던에도 시어서커 소셜(Social)이라는 행사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로수길과 이태원에서 패션업체들의 주최로 시어서커 데이 행사가 몇 차례 열렸었다.

방미 중,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패션이 화제였다.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바꿔 입은 옷들이, 국격을 높이는 기품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국내외에서 박수들을 쳤다. 그 중에서도 지난달 29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내외와의 만찬 때 입은 쪽빛의 모시 두루마기는,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한산모시를 새롭게 주목받게 했다.

이 두루마기는 김여사의 친정어머니가 포목점을 운영할 때 사뒀다가, 혼수로 물려준 한산모시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 한산모시 한복은 천연 쪽물을 들이고, 홍두깨에 감아 방망이로 두들기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따라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 일게다. 그 옷은 한산모시가 지닌 천연섬유 고유의 색감과 홍두깨가 만들어낸 오묘한 광택을 내고 있었다.

시어서커가 시원한 직물이지만, 우리의 전통 모시보다 시원할까. 흡습성, 열전도성, 통풍성, 고슬고슬한 감촉, 거기에 착용 역사까지 시어서커를 훨씬 능가한다. 남 따라 시어서커 데이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모시 입는 날’을 정해 세계인이 따라 할 수 있도록 해보면 어떨까. 경제성과 취급방법만 고민해 해결한다면, 전통문화 계승, 전통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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