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누리백경(百景)(4)

조선시대 말기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대정에 유배되어 있을 때, 친구인 권돈인 정승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입과 코에 남은 병기가 또 눈에 발작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풍화작용으로서 어떻게 억제할 도리가 없소. 여러 해 동안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한 기운이 서로 발작하여 눈이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희미해 보이고 어른거려서 흑백을 쉬 분간치 못하고, 밥을 먹을 때에는 국물인지 고깃점인지조차 분간치 못해 반드시 사람이 옆에서 일러준 다음에야 비로소 그 안내에 따라 밥을 먹을 수가 있소…’

이때 김정희의 나이가 50대 중반이었으니 당시 나이로 치면 노인이다. 늘그막에 건강이 좋지 않음에 대한 한탄스러움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한마디로 이렇다 할 대책없이 병든 몸으로 늙어가는 세월이, 인생이 서글픈 것이다.

예부터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한 인간의 인생을 오복(五福)에 견주어 재단질 했다. 즉 다섯 가지 복을 잘 타고나야  좋다고 믿었다. 첫째가 수(壽)로 오래 사는 것이고, 그 다음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부(富)다. 셋째는 일평생동안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강녕(康寧), 넷째는 좋은 이웃에 베풀며 덕을 쌓는 유호덕(攸好德)이며, 마지막 다섯째 복은 고종명(考終命)으로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오복 중 몇 가지 복을 누리며 살고 있을까. 100세 시대라는데 이중 몇 가지라도 복을 누리며 살고는 있는 걸까. 제대로 준비된 인생을 살고는 있는 걸까.
통계청이 조사한 ‘고령자들의 노후 준비 실태’ 자료를 보면 답답하다 못해 암울하기까지 하다.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가 46.9%, ‘노후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가 53.1%로 전체 조사 대상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고령자들의 생활비 마련 방법은 본인·배우자 부담(58.5%), 자녀 또는 친척 지원(28.6%), 정부와 사회단체 지원(12.8%) 순이었다.

개인별 소득은 본인이 직접 일해서 버는 근로·사업소득이 가장 많고 (44.7%), 연금과 퇴직금(34%), 재산소득(14%), 예금과 적금 (7.3%) 수입 순이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자식들이 늙은 부모 모시는 것을 당연한 자식된 도리이자 효행이라고 간주돼 왔으나 지금은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 하다 은퇴한 노인들의 절반 이상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 후의 삶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권한다. ‘트리플 써티’(30+ 30+30)의 준비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즉 태어난 후 처음 30년은 착실히 교육 받으며 성장해야 하고, 다음 30년은 독립해서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은퇴 후의 기반을 구축해 나머지 노후 30년을 당당하게 제2의 인생기로 가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 단 하나뿐이고 한번 뿐인 우리의 인생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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