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농촌복지,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나…

▲ 농촌지역 복지수준의 객관적 지표는 향상되고 있지만 복지여건, 의료 접근성, 문화여가 등 복지체감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은 농촌노인들이 마을회관에서 건강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

도농 복지격차·복지사각지대 여전히 존재
농촌여성 역할 느는데 복지혜택은 미미

#1. 10평 남짓한 원룸에 사는 80대 할아버지와 70대 할머니 부부는 각각 오래 전부터 척추협착증과 뇌병변을 앓아왔다. 고령에다 몸도 불편해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자녀들이 있지만 경제적 도움을 줄 처지도 못된다. 노인부부의 생활은 기초연금과 장애인복지관에서 지급하는 월 5만 원의 후원금이 전부여서 각종 공과금과 월세를 체납하고 있다.
A군에 살고 있는 노부부 얘기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흔히 우리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평생 농사일로 골병들고 소득도 변변치 않는 농촌노인들. 외지로 출타한 자녀들은 제 살기에도 바빠 고향의 부모에게 신경 쓰지 못하거나 아예 발걸음 끊는 경우도 있다.

#2. B군에서 농사와 식품가공업을 하고 있는 여성농업인 O씨는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가려 했지만 늦은 밤이라 동네 의원은 문을 닫았고, 도시의 큰 병원은 거리가 멀어 참고 다음 날 아침 대도시 병원으로 가야 했다. 인근 마을의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도 출산일이 다 됐지만 산부인과가 없다보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언제 출산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농촌주민 복지만족도 50% 이하
농촌진흥청의 농업인 복지실태조사(2016)에 따르면 농촌 복지수준의 객관적 지표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지만 농촌주민의 복지체감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촌사회학회가 최근 공동 주최한 농촌복지 증진 심포지엄에서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윤순덕 연구관은 “농업인 복지실태조사 결과, 거주지 복지여건, 보건의료 서비스, 의료시설 접근성 등에 대한 만족도는 50% 이하”라고 밝혔다. 낮은 인구밀도와 지리적 여건의 불리함에 더해 보편적 복지에 농촌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도농 복지격차와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령화·부녀화 된 농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복지 박탈감은 더하다. 소득이 3000만 원 미만 농가가 72%에 이르고, 작물재배의 형태의 변화로 여성노동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인련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장은 “우리 농업인구의 50.8%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고 여성의 농업노동 참여비중이 6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여성농업인의 역량 강화와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이며, 이는 여성농업인의 경제적 자립의 뒷받침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우리 농업형태는 대부분 가족농인데 농업노동과 함께 가사·육아까지 맡고 있는 여성농업인의 노동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되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여성은 영농보조자의 역할로서만 인지되고 있어 공동경영주로서의 직업적 인식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농촌특성 맞는 복지사업 부족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여성농업인 관련 복지정책을 보면, 영농·가사·농가 도우미, 교육도우미 등 모성보호 도우미 제도가 있고, 노인개호보험도 실시되고 있다. 방과후 소규모 육아지원, 농번기 공동급식과 행복바우처 제도, 여성농업인 문화활동 지원 등도 농촌여성을 위한 대표적인 복지제도다.
하지만 소극적 복지 지원으로 산부인과 어린이집 등의 돌봄이 취약하고, 노년인구 증가, 젊은 인구 과소화, 여성 농업노동 경감 등 농촌의 생애주기 특성에 맞는 문화복지 지원사업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또한 여성농업인센터 등이 지방사업으로 이양되고, 복지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양성평등 교육과 폭력피해 지원시설이 거의 없는 것도 농촌복지의 현주소다.  

▲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농촌복지 증진 심포지엄에서 김인련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장(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이 토론을 하고 있다.

농촌여성에게 복지는 혜택 아닌 ‘인권’

바우처제도를 농민기본소득제로 발전시켜야
복지실태조사·제도마련에 부처간 협력 필요

이 같은 여성농업인 복지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전남대 여성연구소 오미란 박사는 “고령화, 젊은 인구 과소화, 구성원의 다양화 등 인구사회학적 요인과 경제사회적 여건, 문화적 욕구의 다양화, 복지 지역격차와 성별격차 해소 등 농촌사회의 특징을 반영한 복지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박사는 복지정책 개선방안으로 여성농업인 생애주기별 지원정책을 수립하고, 귀농귀촌, 국제결혼 등 신규 유입인력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는 한편, 농가소득 창출을 위한 생산적 복지, 교통·의료 접근성 강화, 연금·바우처 등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충남연구원 박경철 책임연구원은 “농촌복지 증진을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이를 위해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여성농업인 바우처제도를 확대하고 향후 이 제도를 농업인의 사회적·공익적 역할에 대해 남녀 평등한 보상체계인 농민기본소득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연구원은 또 “농촌 내에서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농촌주민들이 직접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농촌내 인력자원을 활용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특히 여성농업인을 복지가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며 “복지는 혜택이지만 인권은 권리이므로 권리적 차원에서 여성농업인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농촌지역 복지 증진을 위해서는 관련기관이 협력해 농촌복지실태 조사와 정기적인 통계자료를 작성하고 이 자료를 공유하면서 농촌형 복지모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농촌 복지사업이 여러 부처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복지 대상과 이슈별로 주무 부처를 고루 배분하고 사업추진은 유관 부처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형 전담부서(T/F)를 만들어 운영할 필요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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