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길 위에서 시 쓰는 시인 이재무

2017년 새봄은 이재무 시인에게도 특별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겨우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쟁취한 고귀한 주권과 자유의 기쁨이 커서인지 예년과 다른 감정으로 봄을 맞고 있단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위협해 와도 역설적으로 창작하는 예술인, 시인은 살아남는다.
그래서 시인은 위대하다. 강의로 전국을 누비며 오가는 길 위에서 상상하며 시를 쓴다는 이재무 시인을 햇살 좋은 봄날에 만나봤다.

시는 생활에서 오는
구어체로 써야
쉽게 이해되고 공감대 커져

시인의 운명
시인은 시 한 줄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안과 활력을 주지만 본인은 정작 환자일지 모른다. 20대에 선배들로부터 문학이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전염돼 지금껏 치유 불가능한 장기 환자로 살아가고 있다. 시 한 줄을 위해 밤을 지새우고 고뇌하며 한평생을 사는 게 시인의 운명이라면 너무 혹독한 것일까.

이재무 시인이 시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대학교 3학년 복학생 때부터다. 학교 선배들과 어울리다 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력 35년인 이 시인은 올해 열한 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3년 터울로 시집을 냈고 산문집도 3권 냈다고 한다.
이 시인은 “시는 고마운 존재로서 내게 있어 삶과 다르지 않다”라고 한다. 시인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는 그는 그 이유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고 나면 깊은 사유가 뒤따를 뿐 아니라 시를 쓰고 읽는 행위에서 정서적 풍요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품는 공감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주신 무형의 자산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저에게 무형의 자산을 주셨지요. 유전적 형질인 ‘다혈질’과 ‘화술’이 그것이죠. 다혈질은 안 좋은 유산이랄 수 있는데 급한 성격은 다른 사람과 불화를 겪고 그들에게 던진 독설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내 가슴의 과녁에 꽂히곤 하지요. 반면 화술을 주신 덕분에 강의도 하고 그 말로 밥을 먹고 삽니다. 남들은 제가 쾌활해서 고민도 덜하고 털털한 줄 알지만 속으론 까칠한 면도 있고 겉보기와 다르게 슬픔도 많이 겪었지요.”

좋은 시의 오해와 인문학의 중요성
“시에는 어려운 시와 쉬운 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시의 우열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어려운 시에 좋은 시와 나쁜 시가 있고 쉬운 시에 좋은 시와 나쁜 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쉬운 시라 해서 쉽게 쓴 시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쉬운 시를 쓰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시가 안 써질 때는 시와 싸우지 말고 시와 놀아라. 느긋하게 기다리고 충전하다 보면 시가 찾아온다고 그가 말하고 있다.

시는 생활에서 오는 구체어로 써야 쉽게 이해되고 공감대가 커진다는 팁도 주었다. 예를 들면 시장 통에 있는 ‘닭집 아줌마’를 소재로 시를 쓸 때 아줌마의 ‘정체성’ ‘본질’ 등의 추상어보다는 ‘비린내’ ‘땀내’ 같은 구체적 감각어로 써야 정감을 살릴 수 있다. 즉, 눈으로 익힌 개념어보다는 귀로 들은 구체적 감각어가 좋다. 그래서 문학은 12살 이전에 배운 언어로 써야 좋다. 12살 이후 학습된 언어로 쓴 시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것은 눈으로 익힌 개념어와 추상어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600개 단어를 가지고 시를 썼다. 농촌여성들이 시를 잘 쓰고 싶다면 농사경험을 생활 감각어로 재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시 쓰는 요령을 익히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시의 영감이나 직관은 생활 속에서 얻어지고 발견된다.

잘사는 것은 이웃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다. 디지털 문명의 전자 사막시대가 현대인을 소외시키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괴물로 만들고 있지만 사람은 학습을 통해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 때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인문학인데, 그 중 문학은 다른 사람과의 공감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과 매개가 된다.
상상력은 정신적 부자로 만든다
농촌의 봄날을 배경으로 한 아래의 시편에 시인의 사물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해학적 상상력이 들어있다.


「갈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가는 갈퀴 깨워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중략)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모든 살아있는 것들은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면 상상력이 재미를 주고 여유 있는 삶을 선사한다.
농작물들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농사만큼 정직한 게 없다. 농사꾼의 심정으로 세상을 살면 좋겠다.

어깨로 견딘 맏형의 무게
부모님을 일찍 여읜 후 6남매의 맏이인 시인은 부모 대신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고단한 삶을 영위해 왔으리라.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의 이력과는 딴판으로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개구쟁이 같은 그에게서는 유난히 사람 냄새가 짙다. 새삼스럽게 그의 어깨를 보니 작지만 단단해 보인다. 그는 거친 삶 속에서 생겨난 슬픔을 단단한 둑 같은 저 어깨로 버티고 견뎌왔을는지 모른다. 작은 슬픔은 입으로 울고 큰 슬픔은 어깨로 운다고 한다지 않던가. 그런 이유로 상재를 앞두고 있는 ‘슬픔은 어깨로 운다’가 벌써부터 읽고 싶어진다.

시는 한가한 사람들의 사치와 여유가 아니다. 애플의 창시자인 스티브잡스도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는 시집을 읽었다고 한다. 시의 영감 자체가 창조다. 시는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고 기업경영 마인드로도 작용할 수 있다. 시의 유용성은 의외로 넓고 깊다. 각박한 일상에 활력과 리듬을 줄 수 있는 시를 읽으며 이 봄을 즐기면 어떨까.

 

이재무(시인)은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과 석사를 수료했다. 1983년 《삶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섣달 그믐』『벌초』『몸에 피는 꽃』『위대한 식사』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집착으로부터의 도피』『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난고(김삿갓)문학상, 편운문학상, 풀꽃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숙명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고 있으며, ㈜천년의 시작 출판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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