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정기환 한국농촌발전연구원장

한국은 6·25전쟁의 폐허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받아 살아야 했던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경제개발5개년의 성공적인 추진과 함께 1970년대 초반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운동으로 값진 압축성장을 이뤄냈고, 이 같은 성장의 힘입어 이제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돕는 원조공여국(援助供與國)이 됐다.
정부는 1991년 원조공여의 실무를 담당할 기관으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를 설립했다. 코이카 설립 초기에는 주로 물자 중심 원조에 치중했는데, 이후에는 새마을운동 경험 등 기술공여에 주안점을 두고 지원하고 있다. 개도국 농촌개발분야 기술공여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농촌발전연구원 원장인 정기환 박사를 만나 새마을운동 보급 주요성과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문으로 연구해온
새마을운동 이념 개도국 전파
후진국 지역개발에 성공 거둬
UN으로부터 호평 받아

농촌현장과 정책연구 경험으로
베트남형 새마을모델 개발

“일찍이 경기도 내 농업기술센터에서 5년 이상 농촌현장지도 업무를 했습니다. 그 후 농촌진흥청에서 농민훈련과 농촌지도 기획업무를 4년간 하면서 농민지도와 농촌개발방향의 감각을 익혔지요. 1979년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2007년까지 선임연구위원으로 공직을 마감했죠. 퇴직 후 조용히 나무를 심고 가꾸고 싶어 1998년도에 경기도 양평에 산지 1만평을 구입해 은퇴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 코이카로부터 베트남 새마을운동모델 개발과 시범마을 조성사업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 사업은 이후 정기환 박사의 은퇴 후 인생 진로를 바꾸어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정 박사는 농촌지도사업과 새마을운동 경험, 그리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재직 중 학문적으로 연구해온 농촌종합개발사업을 바탕으로 베트남형 새마을모델을 만들고 이를 2개 지역에 실천했다. 베트남형 새마을운동은 주민 참여 속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됐고 베트남 관료와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철저한 현장조사와 주민교육
성과연결로 사업성공 이끌어 내

2002년에 코이카는 UN을 통해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등 3개국을 대상으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전수해 빈곤을 해소시키는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2003년이 되도록 이 사업 추진이 부진해지자 코이카측은 정기환 박사에게 이 사업이 지지부진한 원인을 파악해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후 3년간 UN의 자문관이 되어 이 사업을 추진했다.

“우선 철저한 현장조사와 주민여론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지 실정과 주민수요에 맞는 계획을 수립했고, 관련공무원과 주민을 대상으로 새마을운동 추진 방법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행했어요. 그리고 이 사업을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추진하도록 했습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네팔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라오스에서는 성공적으로 추진됐다. 라오스에서의 성공 비결은 새마을운동의 원리대로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농림수산부와 코이카에서 해외 원조사업에 대한 자문과 현장 사업추진 의뢰가 뒤따랐다. 농경연에서도 연구원이 해외개발협력사업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해 3년간 더 근무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정 박사는 2008년에 한국에서 개최된 제12회 세계농촌사회학대회 조직위원장을 마친 후, 공직에서 물러나 2009년 한국농촌발전연구원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해외개발원조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사람과 가축이 함께 사는 토굴 같은 움막집 개선하고
소 120두 사육단지 조성

정 박사는 그중 보람 있게 수행한 해외개발사업 두 가지를 소개했다.
“에티오피아 오르미아주 불차나 마을을 대상으로 3년간 시범주택 50호 건설, 초지조성과 축사 25동 건립과 소 120두를 지원해 송아지를 생산하는 농촌종합개발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지역은 강우량이 연간 400m에 불과하고 관개시설이 없어 목축 이외엔 먹고 살만한 자원이 없었습니다.
불차나 주민들은 출입구 외엔 창문이 없는 원형 움막집에 살더군요. 가족이 한 공간에서 자고 먹고 가축도 함께 살고요. 그러다보니 질병에 시달리며 삽니다.”

불차나 마을은 목축업을 하는 지역으로 주민간의 협동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전체 508호 중 50호의 시범주택을 지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집을 지어주느냐가 큰 문제였다. 당초 코이카 전문가 회의에서는 아프리카는 소 1마리의 소유권으로 전쟁을 하는 지역인데, 580호 중 50호만 주택을 지어주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마을 원로회에서 주민 신청을 받아 새로 집을 지을 50호의 명단을 작성해 제출해 달라고 주민 대표에게 주문했습니다. 원로회의에서는 아주 민주적인 방식으로 명단을 받아 제게 넘겨주었지요.”  
주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코이카 현지 사무소장은 한국에서 주택 설계 전문가가 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정 박사는 에티오피아 농가 주택은 에티오피아 전문가가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군청 설계사에게 주택 설계를 의뢰했다. 이렇게 건축된 현대식 주택은 방이 3개로 부부방, 딸과 아들들이 각각 방 하나씩을 사용하는 구조이고 부엌과 화장실은 별동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현대식 주택 건축은 주부들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 성공적으로 완성됐고 이 사업에 참가하지 못한 주민들은 소를 팔아서라도 자비로 현대식 주택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협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동원해 마을도로 4㎞를 건설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필리핀 퀴리노주에서 실시한 농업종합개발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돼 현재 2단계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이제까지 생산중심의 기술원조사업을 생산과 가공, 유통을 결합하는 가치사슬형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한 첫 사례라고 한다. 가난한 농민들이 자본이 없어 고리사채에 시달리는 구조를 끊기 위해 농업개발금융을 만들어 자금을 지원하고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주정부산하 유통조직이 수매해 시장에 판매하는 가치사슬을 형성한 것이다.  

향후 5년간 라오스에서
농촌종합개발사업 추진

현재 정기환 박사는 라오스 농촌종합개발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코이카가 라오스에 2015년부터 5년간 150억 원을 투입하는 라오스 농촌공동체개발사업을 맡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에티오피아, 필리핀의 경험을 활용해 잘사는 라오스 농촌 건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이제 제게 주어진 과업입니다.”

한국농촌발전연구원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농기업이 개발도상국가에 진출해 식음료개발, 농산물 유통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는 농업개발협력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기환 박사는 최근에 새마을운동을 둘러싼 잡음이 일부 있지만 한국의 새마을운동이야말로 가난한 국가가 자조와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주민 스스로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이자 해외개발협력사업이라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