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쌀한 인생

몇 해 전 겨울 휴식 겸 충전 겸 태국으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편리함의 장점 때문에 패키지여행을 택했다. 같이 온 일행 부부 중 한 부인은 호텔에서 묵고 나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작은 배낭 외에 가방 하나를 더 챙겨 나왔다. 궁금증은 식사시간이 되면서 풀렸다. 부인은 남편이 식사할 때 가방에서 한국에서 챙겨 온 고추장이며 김치, 장아찌들을 펼쳐놓고 챙기기에 바빴고, 남편은 반찬을 먹으며 태연하게 식사를 했다. 심지어 조식을 제공하는 호텔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일행이 그 부부를 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다.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때는 구운 김 정도는 요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끼니때마다 냄새를 피우며 펼쳐놓고 먹는 모습은 궁상스러워 보였다. 요즘 유행어로 “저 부부는 저러려고 이곳까지 여행 왔나?” 싶었다. 여행의 참 의미는 낯선 곳에서 불편해도 그곳 환경에 적응하고 현지 음식을 먹으면서 새로움을 체험하고 낯섦을 즐기는 일이 아니던가.

집에서 하던 익숙한 습관을 그대로 여행지까지 가져오면 느낄 수 있는 것도 적어진다. 낯선 길 위에서 나를 성찰하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내 삶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실천해야 그 여행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내 입맛만을 고집해서 부인의 수고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여행 갈 때마다 짐만 늘어난다. 다녀와서도 괜히 비싼 돈 주고 여행 갔다가 음식도 안 맞고 볼 것도 없었다고 불평하기 십상이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일찍이 현인(賢人)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다 온 모양일세”라고 했다지 않은가. 모름지기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얻고 담아오려면 출발할 때부터 식습관도 마음도 과감히 집에 내려놓고 가야 효과적일 터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로밍을 해서 그 나라 현지 시각에 맞추듯 그곳 사정에 맞춰나가야 여행지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해 볼 기회가 주어질 테니까.

▲ 류미월 시인, 수필가, 문학강사

‘고장 난 시계’를 찬 사람이 약속 시각에 늦고도 자기 시계가 고장 난 줄은 모르고 정상인 남의 시계를 탓하며 핑계를 대는 수가 있다. 자신의 잘못을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한편 약속 장소에 미리 나와서 여유 있게 상대방을 맞는 사람도 있다. 내 시간이 아까우면 남의 시간은 더 아까운 법이어서 배려하는 마음은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살아가면서 내 시간만 고집하지 않고 남의 시간에 나 자신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스마트한 사람이지 않을까? 식습관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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